[강미숙의 세상돋보기] 잠든 척하는 20%를 어떻게 웃게 만들까?

칼럼 / 강미숙 / 2021-12-29 17:3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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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의 세상돋보기]= 대통령선거는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 최대의 축제다. 

 

온갖 정치적 상상력이 장터로 쏟아져 나오고 정치 무림의 고수들이 총출동하여 각자 자신의 정치인생에서 갈고닦은 기량과 실력을 뽐내는 자리다. 시민들은 이 한판 축제를 통해 5년동안 국정을 맡길 지도자감을 요리조리 씹고 뜯으며 맷집도 확인해보고 인간 됨됨이도 검증하며 사심없이 국정을 이끌어갈 인물인가 탐색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대통령은 8천만 국민의 삶을 결정짓는 자리인 만큼 최소한의 인생검증도 마땅히 감수해야 한다.

이 과정에 처음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유권자로 진입하는 신참내기 선거권자들은 후보와 지지자들의 정치토론을 지켜보며 내 삶을 결정하는 정치적 선택이라는 시민권자로서의 효능감을 느끼며 민주정의 일원으로 성장하게 된다. 정치학습이라는 민주시민교육이 정착하지 못한 한국에서 선거는 선거권자에게나 피선거권자에게나 서로 소통하며 정치적 사유를 훈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이다. 내년 지선부터는 피선거권이 25세에서 18세로 낮아지는 것이 유력해진 만큼 이 과정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이런 효용성이 실종되었다. 윤석열이 국힘당의 대통령후보로 결정된 이후 한달 여 동안 국민들은 극한의 고통 속에 있다. 9수 끝에 검사가 된 후 지금까지 육법전서 속에만 파묻혀 살아온 그는 대한민국 검사의 인식수준과 교양수준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검사 집단의 일원이라면 몹시 부끄러울 것 같은데 검사들이 포진한 윤석열 후보 선대위가 후보의 헛발질에 대처하는 태도를 보면 검사님들은 후보의 대중과 괴리된 인식수준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일부 소수 검사들이 아니라 최고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대한민국 검찰의 평균적인 수준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지금까지 윤석열이 내뱉은 말들 중에는 오랜 세월 갈등비용을 치러가며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쳐 만들어온 법이나 약속, 규범을 부정하는 것들이 많았음에도 언론은 마치 그의 독창적이고 고유한 의견인 양, 다양성이라는 미명하에 이견이라 포장하여 보도해왔다. 최저임금, 주120시간 노동, 영부인 폐지, 토론 무용론 등등이 그러하다.

유권자로서 가장 화가 나는 것은 토론을 각종 궤변을 늘어놓으며 거부한다는 것이다. 콩나물 한봉지를 사도 요모조모 따져보고 사는 게 기본이다.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지 비교대상이 되고 안되고는 콩나물이 선택할 일이 아니다. 상대당의 후보가 거짓말장이든 중범죄를 저지른 자이든 그것을 왜 본인이 판단하는가. 자신이 콩나물인지 소비자인지 구별할 의지도 없이 천지분간 모르고 날뛰는 자다. 자신의 생각이 곧 법이라 여기는 태도로 수십년 검사업무에 임해왔을 거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그럼에도 더 절망적인 것은 아직도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열에 서너명이라는 점이다. 양아치 수준의 윤석열과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인생 전체가 사기인 김건희 부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식이나 손자녀에게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 한번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김건희씨의 사과 기자회견은 그들이 국민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윤석열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때 김건희는 마치 일밖에 모르는 순진한 노총각을 구제해준 것처럼 당당한 태도였는데 사과 기자회견에서는 연약한 남편바라기로 자신의 여성성을 대상화하는 기만을 연출했다. 국민에게 공직자의 도덕적 검증수준을 대학생 표창장으로 격상시켜놓고 허위경력은 로맨틱한 사과로 넘어가려고 하다니 국민을 자기맘대로 쥐고 흔들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비상식적인 접근태도다.

한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를 보면 삶의 양태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내밀한 사생활 영역의 개인적 언어가 있고 대중을 상대로 한 사회적 언어가 엄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그들부부는 사적 언어와 공적 언어가 구분되지 않으며 심지어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에서처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를 벗어나는 언어를 사용하기까지 한다. 설령 그들 부부가 어휘를 잘못 사용한다 해도 기자들이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무비판적으로 받아쓰다보니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난 새로운 해석이 언중을 어지럽힌다. 그들 부부의 낱말 오남용으로 인해 국어사전을 다시 써야 할 것 같다. 


1. 부풀리다: 실제보다 더 크거나 대단한 것으로 과장하다.
교생 실습을 교사로, 강사를 부교수로, 체험활동을 학력으로 기재하는 것은 부풀리기가 아니라 엄연히 눈속임을 목적으로 한 거짓이고 조작이다. 부풀리기는 6개월 근무한 것을 1년 근무했다고 더 크게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김건희의 경우 문제가 되는 거의 대부분의 이력은 부풀리기가 아니라 사문서 위조, 업무방해, 사기혐의가 의심되는 거짓, 조작, 왜곡이다. 사과의 대상이 아니라 수사의 대상인 것이다.

                 ▲ 위키백과 - 기자회견.
2. 기자회견: "기자들을 초청하여 주장을 발언하며 보통 그에 대한 질문과 응답을 받는 행사"
당연히 발표가 끝나면 저요!저요! 손들게 마련이다. 질문을 안 받겠다면 기자회견을 할 게 아니라 사과문 전문을 첨부한 보도자료만 배포하면 된다. 시끌벅적하게 수십명의 기자들을 불러놓고 지지호소문을 발표하고 퇴장하는데도 기자들의 항의 한마디 들을 수 없다. 질문을 안 받는다는 말에 네네 하고 조용히 자판만 두드린 이들을 더 이상 기자라고, 언론이라고 부르는 건 언어도단이다.

3. 강의나가고 박사 나가다
언어는 사유방식의 반영이고 존재를 드러내는 툴이다. 강의는 '하러 가는 것'이고 박사는 나가는 일의 주어가 될 수 없다. 평소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것만큼 명징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다.

이들 부부는 국민의 대선국면 정치학습의 질과 수준을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떨어뜨렸다. 반박하는 것조차 부끄럽게 만드는 이, 대선후보라는 막중한 위치에서 반중혐한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어 외교분란을 자초하는 이가 대표야당의 대선후보라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그리고 이런 자를 오직 정권교체라는 프레임으로 추종하는 30%의 자칭 보수들이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다.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지만 잠든 척 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잠든 10%는 차치하고 최소 잠든 척 하는 20%를 어떻게든 깨우는 것은 실용주의자 이재명의 개인기와 우리가 언론이다를 외치는 시민들의 몫인 것 같다. 

 

잠든 척하는 이의 옆구리를 찔러 웃을 수 있게 만들 비책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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