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 칼럼] 김훈의 기고문에 대하여
- 칼럼 / 김동규 / 2023-08-07 18: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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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8월24일 김훈이 한국일보 전면 기사로 쓴 “전두환 장군 의지의 30년”. |
1. 그의 글은 항상 그렇다. 유려하게 똑똑 끊어지는 문장. 비장미를 양념처럼 듬뿍 뿌린 산문. 그러나 결연하고 단호한 ‘장엄’의 휘장을 한 겹만 들추면 드러나는 표피적인 세계 인식.
김훈이 중앙일보에 쓴 ‘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을 읽었다.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죽음. 그리고 그것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3만명 교사들의 광화문 집회를 보고 쓴 글이다. 절반 정도는 집회 장면의 단순 묘사다. 검은 상복 입은 교사들이 거듭 외쳤다는 ‘공교육은 죽었다’는 주제를 설명하기 위한 평범한 인용들. 이런 자리에 어떤 정치세력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개탄.
2. 여기까지는 읽을 만하다. 문제는 글의 절반을 지나면서 나온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한국인의 DNA 속에 유전되고 있는 ‘내 새끼 지상주의’” 탓으로 돌리는 거다.
그는 이 유전자를 다음처럼 설명한다. “내 새끼를 철통 보호하고 결사옹위해서 남의 자식을 제치고 내 자식을 이 세상의 안락한 자리, 유익한 자리, 끗발 높은 자리로 밀어올리려는 육아의 원리이며 철학”이라고.
뭐 별다를 건 없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숱하게 논의되고 비판되어 온)우리 사회의 극단적 가족 이기주의를 말하는 것. 나는 (당연히)뒤를 이어 그 같은 천박한 사회심리적 병폐를 뿜어올린 시스템적 질곡을 그가 비판하리라 생각했다. 예의 날카롭고 단호한 문장으로.
3. 하지만 이게 끝이다. 이런 문제를 입에 담으려면 그러한 문제적 집단심리를 만들어낸 근(近) 역사적, 구조적 뿌리를 주목해야 하는 것이 상식임에도.
돈이 모든 사회적 가치의 중심이 되고 다시 그것이 권력화되는 금권자본주주의의 극단. “고객이 왕이다!”라는 슬로건이 초등교육 현장에까지 독안개처럼 퍼져버린 세상. 내가 낸 세금으로 내 아이를 학교 보내니, 선생도 내 마음대로 ‘사용’하겠다는 그악한 교육 상품주의.
이런 요인들이 마침내 교사의 가르칠 권리 자체를 짓밟는 괴물이 된 사회적 배경을 최소한이라도 주목하고 지적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점에서 김훈의 기고문은 일종의 무속적 DNA 학설을 넘어서지 못한 그저 피상적 내용이었다.
4. 가장 꼴불견은 자신의 그 같은 ‘학설’을 증명하겠다고 뜬금없는 사례를 끄집어 낸다는 거다. 사회지도층 위주의 내 새끼 지상주의 사례를 들다가 (아마도 의도적으로)갑자기 조국 이야기를 꺼낸다. 해당 문장은 이렇다.
“내 새끼 지상주의를 가장 권력적으로 완성해서 영세불망의 지위에 오른 인물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그의 부인”이라고.
두 가지만 지적한다.
첫째, 조국과 그의 일가족이 멸문지화의 처절한 사법적 공격을 당하는 장면을 김훈은 뉴스에서 한번이라도 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적 이지메의 형극을 통과 중인 한 자연인을 두고 던지는 “권력적으로 완성해서 영세불망의 지위”에 올랐다는 표현은 역설적 조롱이거나 아니면 지독한 착종적 판단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가 정경심 교수에 대한 실형과 조국 가족 모두가 겪고 있는 법적 징벌의 배후에 깔려있는 (윤석열 정권 등극을 목표로 진행된)뚜렷한 정치적 공격의 본질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거다. 아니면 새카맣게 망각하고 있거나.
검찰개혁 흐름이 시작된 지난 5년 간 조국과 그의 가족을 둘러싸고 어떤 비극이 진행되었는가를 그는 인식 속에서 완전히 삭제하고 있는 것이다.
조국 일가에 대한 광범위하고 집요한 징벌이 과연 ‘저지른 만큼 벌을 받아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인가.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수사와 판결의 형평성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누가 목소리 높일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지지한 스스로 행동을 이렇게 해명한 그의 입으로.
"(이명박의) 도덕성에 대해 꺼림칙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살다보면 더럽혀지는 부분이 있는 것이지요. 백지상태보다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5. 김훈의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것은 역시 그가 쓰고 말한 과거의 흔적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광주민주화항쟁의 피웅덩이를 딛고 전두환이 권좌에 오른 1980년 8월 24일 그가 한국일보 전면 기사로 쓴 것이다. 제목은 “전두환 장군 의지의 30년”(사진 1). 제 정신으로 썼든 억지로 썼던 역사적 부역의 글이다.
두 번째는 2000년 9월 27일 한겨레21 인터뷰에서 그가 떠들어댄 다음의 내용.
“(재벌이 아들한테 회사 물려주는 거) 그거 한심하지만 불가피한 거라고. 나도 내집 아들한테 물려줄 판인데…. 우리 사회의 문제를 개선할려면 재벌이 자본을 인간화해 리더십을 보강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재벌이 무너지면 우리가 무너져. 노동자들이 무슨 연대를 해.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서 제일 보수주의잖아. 무슨 신기술 도입하면 저항하고 구조조정에 저항하고… 노동자들이 제일 보수적이고 재벌 리더들이 가장 진보적이라고.”
“나는 <조선일보>를 아주 좋아해서 평생을 보는데, 가장 우수한 신문이더만. <조선일보> 사설 같은 걸 보면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소름이 쪽쪽 끼친다고. 우리 기자들보고 이것 좀 보고 배우라고 하지. 근래 들어 정권에 대해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게 <조선일보> 아니야?”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23000/2000/021023000200009270327078.html?fbclid=IwAR1EEVvlhzT79LOfvxAg528eRGR2-0_CvEWL3OHt-2F-aNj-_nJebvS24zA
한 인간이 인생의 20년 단위로 이런 글을 꾸준히 쓴다는 것은, 그의 세계관이 평생을 두고 큰 변화가 없다는 한 증좌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점에서 김훈이 그그저께 중앙일보에 올린 글도 (색깔과 주장의 지점이 조금 이동하기는 했어도)결국 수십년 간 변하지 않은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나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얄팍하고 즉흥적인 마초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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