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승 칼럼]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 칼럼 / 정철승 / 2022-04-12 16:55:50
![]() |
▲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필립 샌즈 지음, 정철승 옮김) |
"그런 이유라면 헤어지는데 동의할 수 없어요. 단, 조건이 있어요. 번역으로는 안정된 생활이 어려울테니 결혼후에도 내가 계속 직장생활을 하게 해줘요.."
내가 마다할 리 있겠나? 우린 그렇게 위기를 넘겼는데, 뜻밖에 내가 사시에 합격하는 바람에 몇 달 후 결혼했다.
당시 내가 "번역"을 하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던 이유는 번역은 무척 중요한 일인데도 우리나라는 외국 서적의 번역에 문제가 많다는 평소 생각에서 '내가 뛰어들어서 조금이라도 개선시키자'는 책임감 비슷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후 법조인의 길을 가게된 나는 20년 가까이 번역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오다가 수년 전에 우연히 영국의 저명한 국제인권 변호사인 필립 샌즈 교수가 쓴 "East West Street"와 그 번역문을 읽어보고 '이 책은 법조실무가인 내가 번역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법률이론, 법철학과 비교법적 지식 그리고 형사재판 절차와 실무를 모르는 일반인이 어학실력만으로 이 책을 제대로 번역할 수는 없는데, 실제로 전문 번역가라는 이의 번역원고가 그랬다. 이는 사실 모든 전문분야의 책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법조인은 이 두툼한 책을 번역할 시간이 없을 것이기에 결국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번역되기 불가능할텐데.. 에라이 내가 하자!! 뭐 이렇게 된 거다.
그렇지만 솔직히 2019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가 아니었다면 나도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국제인권법은 '법을 통해 보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의지와 지혜 그리고 노력'의 산물인데, 그 핵심인 '인도에 반하는 죄(Crimes against humanity)'와 '제노사이드(Genocide)'라는 용어와 관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실현되었는지를 이 책은 마치 스릴러나 탐정소설처럼 독자들에게 흥미롭고 생생하게 이야기하며 국제인권법 제도의 발전과 성과를 쉽게 이해시키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 우리 사회에 선물했던 이유는 우리 한국 국민은 제국주의 일본과 과거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 '인도에 반하는 죄'와 '제노사이드'의 피해를 당한 전형적인 피해자임에도 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이 우리 사회에서 가능한 폭넓게 읽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일본에 대해 어떤 태도와 요구를 보일 것인지, 그리고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국가폭력 역사에 대해 오늘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 지를 보다 지혜롭고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시민들이 많아지길 원한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프레스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