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숙의 세상돋보기] D-24 양복입은 개, 케르베로스

칼럼 / 강미숙 / 2022-02-14 03: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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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열두번째 과업을 위해 케르베로스를 힘으로 제압해 이승으로 데려오자 공포에

 질린 에우리스테우스 왕이 청동항아리에 숨는 장면을 묘사한 항아리다. 오른쪽에 고삐를

 쥔 이가 헤라클레스다. 케르베로스는 누가 통제하는가에 따라 충직한 파수꾼이 될 수도,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이다. 

 

[칼럼] 강미숙=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머리가 셋 달린 케르베로스라는 개가 등장한다. 아홉 개의 목을 가진 히드라의 형제이기도 한 케르베로스는 하데스가 다스리는 명계의 수문장이다. 살아있는 자가 지하세계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들어온 자는 나가지 못하게 지키는데 함부로 드나드는 자는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게 주어진 임무다. 그래서 지하세계의 왕인 하데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그의 제지를 받지 않지만 다른 이들이 살아있는 채 지하세계를 출입할 때는 케르베로스가 짖지 못하도록 속이는 게 관건이었다.

아내 에우리디케를 데리러 간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연주하여 감동시켜 복종하게 하지만 케르베로스를 잡아올 것을 열두 번째 과업으로 부여 받은 헤라클레스는 힘으로 복종시킨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날고기를 던져주어 진정시킨다. 명계는 아무나 들고나서는 안되는 법이니 케르베로스는 충성스러운 명계의 파수꾼일 뿐임에도 어떤 이유든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이들로 인해 사악한 존재로 묘사된다.

법치는 민주 공화정의 통치원리이고 이를 위한 권력기관 중의 하나인 검찰은 법으로써 정의를 구현하는 전문가 집단이라는 점에서 사회와 국민의 파수꾼이다. 그런데 그 역할을 넘어 스스로 권력의 정점이 되고자 하는 것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뜻에 반하는 이들을 가차없이 사정하겠다는 공포정치, 공안국가를 표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케르베로스가 하데스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불을 내뿜는 반역과 같은 것이다.

지금 인류는 기후위기와 포스트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대전환기를 어떻게 뚫고 나아갈 것인가 하는 시험에 놓여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를 거친 나라 중 유일하게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은 나라,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하고 선진국 대열에 당당하게 진입한 대한민국의 국민은 지금 해방이후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지켜온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험대에 놓여 있다. 친일기득권의 후예들을 지키는 사냥개가 된 검찰권력,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본분을 망각한 케르베로스를 어떻게 제압할 것인가.

우왕좌왕 할 때마다 많은 이들이 촌철살인의 노회찬을 그리워한다. 노회찬의 가치는 단지 그의 말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내편 네편 가리지 말고 싸워야 한다’는 말은 지금 이 순간 너무나 절실하다. 본분을 망각한 케르베로스를 잡으려면 이재명의 어딘가가 맘에 안 들거나 그냥, 또는 왠지 싫다는 사람들도 한 배를 타야만 한다. 스틱스강을 건너가야 주어진 권한을 넘어 미쳐날뛰는 케르베로스를 잡든 잡히든 할 것 아닌가. 누구 말마따나 지금 지옥의 문 앞에 서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각자 분연히 떨쳐 일어나 자신을 넘어 국가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싸워온 의병들의 후예가 아니던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 시간을 사는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라 앞서간 이들의 염원이 빚은 결정체다. 만주 연해주로 건너가 자신은 보지도 못할 세상을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버린 이들의 골수에 사무친 독립의 한이요, 군사정권 하에 뼈와 살이 타도록 고문을 견뎌내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지켜온 피눈물이며, 백두에서 한라까지 전국 방방곡곡 어느 한 곳 성한 데 없이 민초들의 저항과 희생으로 골골마다 뿌려진 살점이다.

권력이 자본으로 넘어간 지 오래고 총칼로 억압하던 시대는 갔다. MB정권은 밥줄을 끊고 모멸감을 주어 시민사회를 분열시켰고 노무현을 잃은 학습효과가 무색하게 박원순과 노회찬을 진보순결주의의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죄로 잃었다. 법과 혀의 칼자루를 쥔 자들이 쳐놓은 거미줄에 다행히 유시민은 비껴갔지만 조국과 윤미향은 걸려들었듯 다음 차례가 누가 되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젠 총칼과 고문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등돌리게 만들어 흔적도 없이 부숴버리는 시대를 살아야 한다. 모든 상부구조와 삶의 토대가 다 허물어진 뒤에 욕설을 비난하고 비판적 지지라는 궤변으로 그를 선택한 손에 장을 지지면 무엇하나.

지금은 2007년 정동영이 싫다고 기권하던 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노무현이 임기내내 공들인 메뉴얼화한 시스템 정치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니 똥인지 된장인지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겼다. 그러나 그 기대를 가차없이 배반당한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은가. MB정권이 저항하는 이들의 손발을 묶고 곶감빼먹듯 국부를 사유화하고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지 않았던가. 당장 오세훈의 서울만 해도 시민의 일상을 보듬는 예산이 얼마나 많이 삭감되었는가 말이다.

이런 절실함과 절박함 앞에 무엇이라도 해야겠기에 미국에서 날아와 집안 표를 단속하고 제자들에게 연통을 돌리며 지인들에게 읍소하는 촛불을 보며 뜨거운 연대의 눈물이 흐른다. 매일매일 발벗고 나서서 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과 등치시키는 시민들이 있어 반드시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때 노무현의 깃발아래, 문재인의 촛불아래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았던 이들과 다시 바다로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기를. 적어도 노무현 정신과 문재인을 말하는 것이라면 차이를 적대로 돌리지는 않기를.

하데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 나은 인물을 세워야지 명계에 들 자인지 아닌지 이분법적 사고가 전부인 케르베로스를 왕으로 세워서야 되겠는가. 김현종식의 화법을 빌리자면 개는 개일 뿐 아무리 써주고 암기시킨다 한들 케르베로스가 양복입은 글라디에이터가 될 수는 없다. 개통령도 사람을 무는 개는 절대 용서하면 안된다고 했다. 하물며 권력의 주인인 국민을 물겠다고 공언하는 마당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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