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숙의 세상돋보기] 사회권, 조국 교수가 건네는 제언 그리고 위로와 연대
- 칼럼 / 강미숙 / 2022-03-31 14:55:35
[칼럼] 강미숙= 우리는 진정 개천에서 용난 나라의 시민인가. 대한민국은 시민혁명으로 민주정을 쟁취하지 못한 결과 숱한 시민항쟁을 거치며 후불로 희생을 치른 후불제 민주주의라 한 유시민은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권의식과 시민의식을 갖춘 시민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2009년 3월 9일에 펴낸「후불제 민주주의」는 문명의 역주행을 지켜보는 시민들에게 야만의 시간을 견디는 하나의 교과서가 되었다. 그후 13년이 지난 2022년 3월 25일에 펴낸 ‘연대와 공존, 사회권 선진국을 위한 제언’이라는 부제가 달린「가불 선진국」을 받아들었다. 우리는 13년 전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후불이든 가불이든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없이 허약한 구조라는 것과 촛불로 대통령을 탄핵시킨 시민들이지만 여전히 정치적 사회적 시민성은 취약하다는 것, 그리고 숱한 갈등과 협상 끝에 안착시켜온 법과 제도조차도 한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비민주주의자 MB와 이를 능가하는 검찰주의자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는 점 정도가 공통점일 것이다. 데자뷰라 할 수 있는 상실의 시대에 한 권은 헌법에 대한 이해와 권력이 실재하는 양상을 다룬 헌법 에세이이고 한 권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이제 무엇을 천착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등이다.
유시민의 프롤로그는 ‘권력의 역주행에 대처하는 현명한 자세’이고 조국은 ‘학자로 살다 잠시 관직을 맡고는 위리안치된 사람’으로서 감당해야 할 일을 감당하고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밝힌다. 유시민은 노무현 정부의 과실을 따먹으며 제도적 개혁은 하나하나 지워가는 MB 정부 1년을 지켜보며 썼고 조국은 얼척없는 대선을 지켜보며 차기정부에게 전하는 애정어린 조언을 썼고 출간 직전 대선결과를 접했다는 게 다르다. 그러나 그들은 공통적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시민들은 시민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13년이 지나는 사이 유시민은 정계에서 은퇴했고 조국의 멸문지화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 두 사람을 보면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에서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함의를 지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던가. 내 조국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후불을 치르느라 고전중이고 힘없는 이웃들의 웃음과 행복을 가불로 갖다쓴 덕분에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여전히 소수자와 약자를 품지 못하고 있다.
사회권이란 법적 용어일 뿐 그리 낯선 게 아니다. ‘노동, 주거, 복지, 생계, 의료 등의 분야에서 사회적 경제적 약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일컫는 것으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 확대된 개념이 아닐까 싶다. 헌법학에서는 노동3권과 근로의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주거권, 보건권 또는 건강권을 사회권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저자는 연대와 공존이라는 시대정신의 법률적 표현이 사회권이라 말한다.
사회권은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이며 권리는 주체가 요구하고 주장해야 권리가 된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지만 나또한 코로나 초기 전국민 재난지원금 논의 때 나라가 나에게 생활비를 지원해준다는 게 시혜처럼 느껴졌다. 자영업자들이 힘들다기로서니 임대료를 왜 국가가 부담해야 하지? 하는 의문이 남아 있었으니 사회권이란 개념이 얼마나 관념 속에 머물러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편복지를 말하면서도 여전히 취약계층에게 더 두텁게 해주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말이다. 취약계층이란 범주에 청년, 특고노동자, 프리랜서 등 고용불안을 겪는 이들도 포함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지만 그런 범주도 필요없이 ‘모두에게 골고루, 그리고 일부는 더 두텁게’라면 더 좋지 않겠는가.
저자는 1,2장에서 문재인 정부의 성과와 미완의 과제에 대해 짚고 대표적인 실책이라 할 수 있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집값을 시장에만 맡기지 말고 지대개혁을 통해 안정적 주거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장부터 7장까지는 차기정부가 이어서 해야 할 일을 다루는데 부동산 정책, 지대개혁을 둘러싼 공약, 노동의제에 대해 이재명과 윤석열, 다른 경선후보들의 공약을 비교하여 기대와 우려, 더러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특히 독일 언론에서도 한국이 새로운 국가로 나아가는 기로에 서있다며 중요하게 다룬 의제인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이재명의 기본소득, 김두관의 기본자산, 이낙연의 신복지, 민주당 이용우 의원이 발의한 청년기본자산 등등의 구상과 계획을 상호배제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국민의 필요와 국가재정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절충, 조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부분은 윤정부 하에서도 적극적으로 입법하고 국정에 반영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87년 6월항쟁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고 남은 과제는 사회적 경제적 민주화였지만 IMF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여파로 좌초되었다는 것,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국정을 운영했지만 코로나19 위기해결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목표했던 사회적 경제적 민주화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정치적 민주화의 요체가 자유권이라면 사회적 경제적 민주화의 요체는 사회권이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사회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자유권마저 유명무실해진다고 염려한다.
정치적 민주화가 시대정신이었던 시대는 갔다. 문정부 재임기에 운크타트든 아카데미든 G7이든 세계는 전방위적으로 대한민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고도의 자본주의 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급, 계층, 집단의 희생에 기초한 나라임을 우리는 잘 안다. 저자는 지금 한국사회는 최고 수준의 자유권을 누리고 있고 이제는 사회권을 자유권 보장 수준으로 높여야 할 차례라고 말한다. 그래야 약자들의 희생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이 가불한 빚을 갚을 수 있고 그래야 지속가능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연대와 공존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었지만 여전히 여성과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탈북민 등의 사회적 약자들은 차별과 멸시 속에서 산다. 공감과 공존, 고통분담을 말하는 리더와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놓고 조장하고 부추기는 리더는 사회의 방향 지시등 역할을 한다. 이럴 때 가장 먼저, 가장 강력하게 타격을 받는 이들이 소수자들이고 이미 전장연 시위를 향한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포털을 도배하고 있다. 여가부 폐지 입장을 고수했으니 당장 성폭력 피해여성들은 의지할 곳이 없고 각종 성인지 예산과 정책들은 후퇴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자의 당부처럼 환대할 용기를 갖고 소수자를 끌어안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윤석열 정부는 사회권 선진국에 대한 계획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오히려 누구도 건들지 못할 것이라 믿었던 자유권마저도 흔들릴 위기에 봉착해 있다. 벌써부터 자기검열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디밀었던 발을 슬그머니 빼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문재인은 빨갱이이고 간첩이라 한 발언도 무죄판결이 났지만 이제는 무당 얘기만 꺼내도 긴급조치가 부활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올린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적 민주화가 그 정도로 허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외연적 발전을 넘어 내포적 발전을 위한 사회적 경제적 민주화라는 사회대개혁은 시대적 과제다. 이를 거부하면 오징어게임에서 오영수 배우가 외친 것처럼 우리 모두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이라고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됐든 우리는 퇴행의 시대를 맞이하는 중이고 견뎌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천신만고 끝에 진정한 선진국으로 한단계 도약하는 발돋움판 앞까지 왔는데 눈앞에서 다리가 무너졌다 하여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 무엇이 되었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조국 교수가 시민들이 넣어준 반딧불에 의지해 멸문지화의 터널 속에서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와 연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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