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숙의 세상돋보기] 문재인을 탄핵한다는 발언을 탄핵한다

칼럼 / 강미숙 / 2022-03-18 14: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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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미숙= 지난 2019년 8월9일 조국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고 청문회 마지막 날 정경심 교수가 전격 기소되면서부터 시작된 현실정치 과몰입은 무려 2년6개월이 넘도록 지속되어 왔다. 문재인 정부의 절반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그 사이에 조국대전이 있었고 코로나 역습이 있었으며 추미애의 외로운 사투와 얼척없는 대선까지 피가 끓던 20대 이래 가장 현실정치에 몰입하고 산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대통령 임기 5년이 정말 길다고 느껴진다. 혐오와 무당을 삶의 기본으로 삼는 자가 국가지도자라니 타국을 떠돌다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노덕술을 마주하는 느낌이 이랬을까, 역사적 서사에 대한 상상력의 빈곤은 그 게으름을 추궁받듯 잔인하게 메우게 되었다.

손혜원 전 의원의 말을 빌어 이재명을 민주당 당대표로 추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글을 올렸고 많은 분들이 의견을 주셨다. ‘이재명이 민주당 당대표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글을 쓰다 문득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말 뿐인 말’을 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너무 오랫동안 현실정치, 그것도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는 대선이라는 빅 이벤트에 자발적 서포터즈로 포지셔닝하다보니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그래서 ‘나만 보기’로 돌리고 거리를 두기 위해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험한 세상 함께 건너가자고 위로를 해놓고서 말이다. 나부터 살고보자 싶어 며칠 몸을 혹사시키고 어제 밤늦게 돌아왔다.

며칠 동안 뉴스도 페북도 열지 않았다. 페북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져 숨조차 쉴 수 없다고 절망하는데 세상은 평온했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어쩌면 이것이 선거 패인의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데 세상은 아랑곳 않고 무심하게 흐르는 이 생경함은 어느 날 갑자기 집안이 풍비박산나 인생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던 그 시절 느꼈던 것과 매우 흡사했다. 현실인식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거다. 그러나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 언제나 그랬듯이 이럴 때 취할 수 있는 자세는 이또한 지나가리라 믿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는 다짐을 수백 수천번 반복했다. 그리고 이명박 당선 이후 뉴스도 끊고 세상사 등 돌리고 살았던 것을 반성하며 이번에는 치욕스러워도 두눈 부릅뜨고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 기록하겠노라 다짐했다.

현실로 돌아오는 길에 페북을 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절망에서 헤어나와 평상심을 되찾으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가득했고 서로 힘주고 격려하며 다시 주어진 현실 정치의 과제에 대해 갑론을박이 뜨거웠다. 이렇게 훌륭한 국민들을 둔 정치인들은 참 복도 많지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탄핵한다>라는 매우 자극적인 제목의 글을 보았다. 처음엔 대선 결과에 속상한 나머지 하소연하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가볍게 읽고 넘겼는데 어딜 가나 그 글이 있었다. 그래서 글쓴이의 계정에 들어가 정독하고 댓글도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무척 공감한다는 댓글이 절대다수였고 엄청 많은 이들이 공유로 공감을 표했다. 누군가 '국민이 그렇다면 그런 겁니다'했다던데 이것도 그렇게 봐야 하는 것일까.

어제는 몸이 너무 피곤해서 감정적으로 읽었을지도 모른다 싶어 오늘아침 맑은 정신으로 다시 정독했다. 글쓴이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나는 2009년 4월이 생각났다. 그래서 지난 4년 동안 페북하며 단 한번도 개인의 의견에 왈가왈부하는 일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커밍아웃이기도 하니 여기까지 읽고 맘에 안 들면 지나가시면 된다. 아마도 무척 길듯하니 평소 내 글이 길다고 공개적으로 불평하다 못해 페메로도 몇 번씩 가르치려 들었던 분들은 나를 페삭하시길 바란다. 참고로 나는 개인을 우상시하며 숭배하는 것을 혐오하는 사람이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 할 때 몹시 불편했고 지금은 모든 책임을 한 개인에게 묻는 태도에 몹시 불편하다. 안나 카레리나 법칙은 어쩜 이렇게 예외가 없는 것인지.

‘나는 탄핵한다’는 글이 1300회 가까이 공유되어 널리 회자되고 있으니 굳이 요약할 필요는 못 느끼지만 그의 결론은 ‘문재인이라는 사람은 개혁보다 지지율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정의를 버리고 지지율이라는 사적 욕망을 택했다, 체면과 지지율만 염려한 착한 아이 증후군에 빠진 정치적 미숙아이자 의전정치에 취해 성군놀이를 즐긴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지도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각론에 있어 동의되는 부분도 많고 나또한 그 누구보다 문재인의 고구마 같은 국정운영에 여러번 속이 뒤집어진 사람이라 반박할 만한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문재인에게 정권재창출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합당한 시각인가. 고전번역가라고 자신을 소개하셨던데 정치와 사람을 이렇게 접근해도 되는 것인가 묻고 싶다.

다 결과적인 얘기다. 만약 모두가 원하는 결과였대도 그런 평가를 하고 동의했을까. 그때 이랬더라면, 저때 이랬어야 한다는 불만을 하나하나 복기하여 정리하는 것이 어떤 의미와 효용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구구절절 동의되지만 그 책임의 화살을 온전히 문 대통령에게 전가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리고 지금 제일 시급한 할 일이 그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문재인은 모두가 알다시피 권력의지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착한 아이 증후군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 원래 성직자가 어울릴 법했던 그런 사람이다. 그가 학생운동을 한 것도 감옥에서 받아든 사시 합격증서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던 것도 그런 성정 때문이었다고 본다. 그런 사람을 몇 번이고 찾아가 현실정치로 귀의하라고, 노무현의 유지를 받들라고 요구한 것은 민주당과 국민이었다. 그 결과가 권력의지 없이 불려나와 맹탕으로 선거한 2012년 대선이었다. 하지만 그는 역사에 한번은 불려나올 운명이었는지 탄핵으로 세워진 정부의 수장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 과정도 없이 개문발차한 정부다. 대통령이란 봉황이 그려진 자리에 앉는 순간 끊임없이 결정해야 하는 자리다. 예행연습도 없이, 국정현안에 대한 정상적인 인수인계도 없이 그 막중한 자리에 앉았다. 국민이 그에게 국민이 부여한 과제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거였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복원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3수씩이나 한 평창 동계올림픽이 동네 운동회만도 못하게 될 것을 염려했지만 그는 훌륭하게 치러내고 남북의 물꼬를 트는 성과까지 거둬냈다.

나라다운 나라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나라다. 이것은 노무현이 꿈꿨던 것이고 그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을 이명박이 하나하나 무력화시키는 것을 보아온 나는 그가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기원했다. 비선실세들이 국정을 결정하고 대통령 연설문을 최순실이 써주는 상상을 초월하는 국정농단 이후 요구받는 것은 시스템정치, 곧 책임과 권한을 분명히 하는 법과 제도에 의한 법치였다. 문재인은 검찰개혁이 공약이었고 학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조국과 박상기를 기용해 검찰개혁을 위한 밑작업을 하게 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임기 중반이 된 시점인 2019년 8월 실행단계로 전환하기 위해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그는 박근혜 수사를 담당했던 윤석열에게 검찰개혁 의지를 물었고 국민 다수의 지지로, 장제원과 김진태의 거품문 반대를 무릅쓰고 검찰총장에 앉혔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해당부처의 장이 판단한 것을 함부로 막거나 간섭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권력의 본질을 잘 아는 분들은 이때부터 그를 비판했지만 솔직히 나는 내가 모르는 세계이니 다 뜻이 있겠지 했다. 문은 윤에게 검찰개혁 과제를 줬고 윤은 그것에 응했다. 윤이 조국을 전방위로 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본 것은 정말 뼈아픈 일이지만 그는 윤을 내치지 않았다. 하지만 추미애 장관이 윤 징계안을 올렸을 때 반대하지 않고 재가했다.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 나는 그것이 문재인식 해법이었다고 본다.

당시 전 국민이 내로남불을 외치고 언론은 백만 건이 넘게 조국과 그의 가족을 망신주기하고 있는데, 민주당에서는 어느 누구 하나 입도 뻥긋 못하는데 만약 대통령이 가진 임명권을 행사하여 윤을 파면했다면 어떤 후폭풍이 일었을까. 그래도 180석이라는 사상초유의 압승이 가능했을까. 오로지 법과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또는 임기가 정해진 자리를 끝까지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과에 따라 칭송도 되고 패착이라고 욕도 먹는 것이다. 그것이 비판받을 수는 있지만 지지율에 취해 성군놀이를 했다거나 퇴임 이후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개혁과 정의를 버렸다는 식의 매도에는 동의할 수 없다.

추미애 장관에게 대통령이 좀 더 힘을 실어주지 않은 것에 나도 무척 서운하고 많은 비판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히 문재인만의 책임인가. 180석을 몰아줬는데도 제대로 못한 책임을 문이 가장 무겁게 받아야 하는 것인가. 추미애와 문재인, 조국이 검언정판 기득권 카르텔에 둘러싸여 있을 때 역할을 해야 한 것은 문이 아니라 180석 민주당이었다. 추미애 장관이 광야에서 홀로 외로이 칼을 뽑아들 때 민주당 의원들은 무엇을 했나. 어디가 전선인지 알지도, 알 의지도 없는 인간들이 배지를 달고 마치 검투사들의 경기를 지켜보듯 귀족 코스프레한 것이 가장 큰 책임이 아닌가.

정치는 개인 또는 특정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세력이 하는 것이고 당정청이 협력하는 총합이다. 정치세력 없는 개인은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문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라고 압승시켜줬는데 개혁법안을 밀어붙이지도, 추미애에게 힘을 실어주지도 않았다.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은 책임은 문이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에게 물어야 한다. 기승전 문재인이 아니라 기승전 민주당이라는 뜻이다. 검찰개혁이 대통 한사람이나 장관 한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다면 왜 지금껏 제자리에 후퇴만 거듭했겠는가. 이런 민주당 멘탈로는 설령 조국이 무리없이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해도 검찰개혁은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 뻔하다. 시대정신도 개혁의지도 없는 허수아비 민주당 의원들을 대거 국회로 들여보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아끼는 것은 다 지나고 나서 그때는 이랬어야 저때는 저랬어야 하는 건 전형적인 남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80석 민주당을 허깨비로 만든 이낙연이 죽도록 밉지만 총리로 있을 때 나부터도 그가 국힘당 의원들을 낮은 음성으로 조곤조곤 씹어발리는 것을 통쾌해 했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에 환호할 때 우려스러운 건 나만의 기우이길 바랬다. 아마도 선거에서 이겼다면 많은 것들이 용서되고 어쩌면 다 포석이었다고 추켜 세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문재인이 부하들이 피흘리고 쓰러지든 말든 자신만 고고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비열한 장수이거나, 지지율 놀이에 취해 밑장 빠지는 줄도 모르고 자화자찬에 빠진 무능한 지도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지금의 이 모든 비극이 문 대통령의 자뻑놀이 때문인 양 몰아가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누구나 자기 스타일이라는 게 있다. 대통령이 됐으면 자신을 버리고 대의를 따라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개인은 자신의 한계와 제도를 뛰어넘을 수 없다. 문이 지지율에 취해 정권재창출에는 관심도 없고 극문의 행태를 나몰라라 했다고 지적하는데 나는 그가 그 나름의 방식으로, 문재인식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했다고 생각한다. 위 글의 필자는 박근혜 사면을 ‘국민적 동의절차 없는 느닷없는 기만전술’이라 평했지만 나는 민주당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말 한마디에 탄핵으로 치달았던 정치현실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지율에 일희일비한다면 노태우 국장과 박근혜 사면을 왜 감행했겠는가. 이런 결정이 퇴임 이후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보험이라 말하는 것은 그가 살아온 인생의 맥락을 놓고 보았을 때 문재인에게도 우리에게도 너무나 모욕적이다.

어찌됐든 문재인은 정권재창출 실패라는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 책임을 묻는 것과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이것이 저들에게 어떤 시그널을 줄까 심히 우려된다. 저들은 필요하면 언제든 지지자들의 동향이 이렇다며 확대시키거나 침소봉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다. 말조심은 잔칫집이 아니라 상가집에서 해야 하는 법이다. 하물며 나같은 필부조차 공론의 장에서 말하는 것에 스스로 자기검열하고 이것이 미칠 수 있는 혹시모를 파장에 대해 두번세번 생각하는데 ‘사람’을 다루는 고전 인문학자께서 이렇게 가벼이 펜을 휘둘러서야 되겠는가.

본 글에서 문을 성군놀이에 취한 정치적 미숙아, 퇴임 이후의 안전에나 관심있는 형편없는 지도자라 매도하니 댓글에서도 문재인 개새끼론이 나오고 무능이 아니라 애초에 나쁜 놈이었다거나, 문은 윤을 찍었을 거라거나, 지지율에 취해 개혁은 관심도 없는 무능한 자라고 함께 돌팔매질을 한다. 글쓴이는 이런 반응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하다. 애초에 그의 글에 댓글을 쓰고 싶었지만 “정치적 견해가 다르신 분들은 굳이 시비를 가리려 에너지 낭비하지 마시고 걍 스팸 취급하시면 됩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의 존중이 최상의 가치입니다“라고 했기에 차마 댓글로 쓰지 못하고 심히 에너지 낭비를 하고 있다.

인문학자께서 민주주의는 다양성의 존중이 최고라 전제하면서 나같은 필부도 하지 않는 귀를 닫는 태도를 보이다니 스스로 건강한 비판이 아니라 절망감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참고로 나는 대깨문도 아니고 광신도도 아니다. 그냥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서 내 나라가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민주주의가 시스템으로 뿌리내리길 진심으로 바라는 필부일 뿐이다.

나는 철없던 시절에 선배도 없이 혼자 공부한 몇 권의 사회과학 서적이 내 인식의 전부인 보통의 중년여성이다. 그렇다보니 사회를 분석할 틀이나 도구를 갖고 있지 못하다. 내 글이 실증적이지 않은 한계를 가진 근본적인 이유다. 다만 언제나처럼 내 생각을 말할 뿐이고 건강한 비판이라면 언제라도 토론할 자세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건만은 나도 그분의 방식대로 제대로 여물지도 검증되지도 자칫 주관적인 상념이 팩트로 오인받을까 염려도 잠시 내려놓고 아무말 대잔치처럼 오늘 이 사단에 대한 책임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려고 한다.

첫째, 학자들은 게을렀다. 우리 사회에 지식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시민들이 형성하는 담론 이상의 논의를 주도하고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거나 대안이 필요한 분야마다 어떤 역할을 했는가. 나는 특히 교수집단이 문정부를 앞장서서 비난하고 정권재창출 실패의 책임을 묻는 것이 매우 의아하다. 저들이 이대남 프레임으로 이념갈등, 지역갈등에 이어 남녀갈등을 부추길 때 그 많은 정치학자와 사회학자, 인문학자들은 무엇을 했나. 20대 남성이라고 다 같은 결이 아님을 모르지 않았을 터, 2030여성들이 선거일을 불과 이삼일 앞두고 일번남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끌어낼 때까지 사회현상을 읽고 분석하며 개념화하거나 오류를 바로잡아야 할 학자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에 어느 사회가 자신들의 자식들을 이대남, 이대녀라 호명하는가. 난 그 용어 자체가 갈등을 부추기는 말이라고 느껴져 웬만하면 비켜갔지만 마땅한 호명방식을 찾지 못했다. 다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현상, 새로운 조류를 설명할 수 있는 용어를 생산하고 사회적 공론으로 의제화하는 것 또한 학자들의 사회적 역할이 아닌가. 우리나라 학자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번역된 어휘, 특히 대통령과 같은 정치적 언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과거야 그렇다치고 지금조차도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조어의 노력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나는 2015년 메갈사태 이후 1세대 페미니스트들, 사회학자, 여성학자들의 현실진단과 대안제시, 담론형성을 위해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시대의 어른이 없다고 말한다. 툭하면 나타나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논거를 가지고 설파하던 지식인들이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열공TV와 민중의 소리, 개별 시민들 이 피터지게 싸울 때 언제나 사회지도층 인사로 이름을 올리던 그 많은 학자와 성직자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선거에 졌다고 대통령을 탄핵한다 조목조목 글을 올린 인문학자의 고매함과는 한참 거리가 먼 시골아줌마는 심히 빈정이 상한다. 그런 결과론적인 평가는 선거에 영혼을 갈아넣은 시민들 그 누구도 말을 아낄 뿐 모르지 않는다. 굳이 절망에 빠져있는 이 타이밍에 그런 글로 문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혐오를 생산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번 선거에서 문제가 된 재외국민 사전등록제는 이슈조차 되지 않았다. 나도 재외국민으로 등록되면 누구에게나 선거권이 있는 줄 알았는데 너무나 실망스러워서 사전등록을 하지 않을까 한다는 어느 재외국민의 말을 듣고 처음 알았다. 우리는 건강한 담론들이 형성되지 못한 책임을 언론에게만 묻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어느 정부보다 공론의 장이 열려있었음에도 지식인 집단에 의해 시민사회에서 다뤄져야 할 의제를 공론화하는 노력은 부족했다.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모든 것을 언론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방관자의 자세로 임한 것은 아닌지 누구도 예외랄것 없이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여성계와 어른들의 무책임.
여성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는 2030 여성들이 선거 막판에 유입되었다. 그리고 그 공을 인정받아 박지현씨는 공동 비대위원장이 되었다. 난 민주당의 청년활용법이 심히 우려스럽다. 일반적인 2030 여성들이 그들과 공감대를 얼마나 형성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 덕분에 표차를 줄였다며 그녀들의 말을 다 들어주자는 식의 태도는 그 범주 바깥에 있는 더 많은 2030 여성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2030 여성들을 마치 메시아인 양 받드는 현상이 난 몹시 우려스럽다. 그녀들의 피해자 중심주의에 진정 동의가 되시는가. 앞으로 타협이 안 되는 지점들이 발생하거나 혹여 시민들의 반발이 커지거나 하면 그땐 어떻게 하시겠는가. 조동연씨를 불러놓고 여론이 좋지 않으니 알아서 판단하라고 걷어찬 것과 다를 수 있겠는가.

난 민주당이 청년들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열탕과 냉탕을 오고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득 되면 내편, 그렇지 않으면 일베취급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언젠가 다른 화살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녀들을 배척하라는 게 아니라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치에 바라는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듣고 토론하는 게 먼저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비대위원장이든 당대표든 그 다음 수순이 되어야 한다. 난 그녀들은 2030 여성들이 가진 문제의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뿐 일반화하거나 잔다르크인 양 영웅시하는 것은 몹시 불편하다.

대한민국의 여성운동을 이끌어온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하다. 나도 한때 꽤 오랫동안 여성단체 회원으로 운영진으로 영혼을 실어 활동했지만 청년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나또한 그들이 기득권이 된 것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모습에 환멸을 느껴 발길을 끊었다만 결코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페미니즘이 청년들 사이에서 난도질 당할 때 여성학자들, 여성운동가들은 무엇을 했는가.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한 결과 정치인들은 비겁하게 20대 뒤에 숨었고 젠더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세째, 결국 문제는 민주당이다. 

기승전 문재인이 아니라 기승전 민주당이고 민주당 국회의원이다. 조국 인사청문회가 열린 2019년 9월 6일 당시 민주당은 120여석에 불과했고 그나마 개혁적 의지가 강한 의원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윤을 파면했다면 언젠가 말한 적 있듯 레임덕이 시작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발목 잡히지 말라고 20년 4.15 총선에서 개헌도 가능한 180석을 민주당에 몰빵해 줬다.

이후 윤이 추 장관과 격렬하게 부딪치던 21년 1월18일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말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 그는 법무부와 검찰은 검찰개혁이라는 과제를 협력해야 하는 관계이지만 검찰개혁 과정에서 벌어진 불가피한 갈등이라며 임기제가 보장되는 검찰총장을 법적 테두리 안에서 징계하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당시에는 윤이 정치권으로 나가는 길을 차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없지 않았다. 이 시점이야말로 민주당 의원들의 존재감이 절실했던 때다.

180석이나 몰아줬음에도 의원들이 내편 유튜브에 나가 마치 용한 도사에게 윤허받듯 눈도장 찍기 바쁘고 국힘당과 언론이 도와주지 않아서 일을 하기 힘들다고 징징거렸다. 협치를 말하면서 상임위원장을 넘겨주고 사사건건 힘들다 시민들에게 징징거리는 국회의원들을 기억한다. 그거 하라고 시민들이 몰아줬고, 그거 하라고 엄청난 세비를 받는 자들이 SNS에 징징, 유튜브에 나와 징징, 뭘 했다가 아니라 맨날 열심히 하겠다고 선거운동 공약 남발하듯 말로만 정치질한 의원들.

180석이나 갖고도 국민의 원성이 자자한 홍남기를 탄핵하지도 그럴 의지도 없었던 의원들. 시민들이 국회 차디찬 바닥에서 농성하라고 180석을 몰아준 게 아니다. 그는 나도 할만큼 했다고 자위할지 몰라도 나는 심히 모욕감을 느꼈다. 홍남기가 개인인가. 그는 대한민국 경제카르텔의 자장 속에 있는 기재부 관료다. 문재인이 그를 파면하고 최배근 같은 이를 임명하면 과연 뜻을 관철시킬 수 있었을까.

기재부 경제마피아들에 둘러싸여 있는 문재인이 못하면 민주당 의원들이 홍남기로 상징되는 기재부 관료들을 탄핵이라도 해서 국민의 뜻을 관철시켰어야 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자들이 좋은 시절에는 꿀만 빨다 상황이 불리할 때마다 조국 때문에, 추미애 때문에를 고장난 라디오처럼 읊어댔다. 나는 그들에게 심히 모욕감을 느낀다. 그러니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책임은 이리보아도 저리보아도 민주당에 있다.

180석의 3분의 2는 점퍼만 바꿔 입은 국힘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러면 지역은 어떠한가? 내가 사는 동네는 사상 처음으로 기초단체장도 광역단체장도 민주당이었다. 그렇다. 다들 번번이 무시당하고도 국힘당 바라기라고 충청도는 전략적 위치에서 캐스팅 보트라도 되지 강원도는 만년 민정당이니 감자나 먹고 살아라 조롱받는 강원도에서 말이다. 바람타고 당선되어 3선 12년 동안 기초단체장이든 광역단체장이든 MB가 울고 갈 정도로 토건과 개발로 일관했다. 오죽하면 원명박, 최명박이라 할까. 중앙도 퍼런 점퍼입은 수박들이 수두룩빵빵한데 지역은 두말할 것이 없지 않겠나. 당장 다음 지선에 점퍼를 갈아입고 나가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민주당의 정체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자 이렇게 너도 책임있다 당신도 책임있다 배설하면 나는 고고해지는 것인가. 나도 그 속에 있었고 함께 똥물을 뒤집어쓰고 있다. 지금 시기에 문재인을 구중궁궐에서 성군놀이나 하는 유약한 선비로 폄훼하는 것을 보며 2009년 3월부터 노무현 서거 때까지 그렇게 노무현을 씹어대던 한겨레가 생각난다.

한겨레는 2009년 4월 9일 사설에서 “노 전 대통령이 보이는 태도는 구차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남김없이 고해성사하고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했고 5월 6일 성한표 전 한겨레 논설주간은 “포괄적 뇌물 혐의를 수사하기 위한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조사를 전후하여 언론의 논조는 흡사 장례절차를 진행하는 것 같이 바뀌고 있다. 그를 기어이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아직도 나오긴 한다. 하지만 이미 정치적 고인이 되었으니 더 이상 법정에 세워 부관참시 할 것 없이 고인의 명복이나 빌어주자는 것이 대세다.”고 했으며 같은 날 다른 코너에서 “나라 체면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 재임 때 푼돈이나 먹은 잡범이 대통령을 한 나라로 널리 공표됐다.”고 비난했다. 5월 11자 오피니언 코너에서 강준만 교수는 “최근 유력 신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보도에서 노 전대통령과 그 일행이 저지른 위선과 기만에 대해서 추상과 같은 비판을 퍼부었다. 옳은 일이며 잘하는 일이라 믿는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노무현이 죽은 다음날인 5월 24일자 사설에서는 “검찰수사가 시작된 이후 그가 느꼈을 비애과 고통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명예와 신뢰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받았을 수치와 모욕감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했다. 그 이후 논설주간이나 홍세화, 박범신등은 성찰없는 권력의 가학성, 정치검찰의 책임, 우리는 왜 이렇게 잔인해졌을까 지못미를 외치는 시민들을 업고 매일같이 탄식했다. 한겨레가 한걸레로 불리게 된 이유다.

죽어야 사는 나라. 박원순 시장도 노회찬도 그렇게 간 것이다. 문재인을 또다시 부엉이 바위 위로 올릴 것인가. 선거에 이기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싶었다. 절망감이 나만의 것이 아니듯 문제를 진단하고 감정을 배설하는 것도 나만의 욕구불만 해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은 공이고 과는 과이어야지 선거 결과로 나라다운 나라, 어떤 경우에도 법과 제도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는 국민의 주문을 성실하게 수행한 대통령을 우리부터 내치는 것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도 문재인이 밉다. 이 지경으로 만든 대통령이 야속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민주당이 밉고 그들의 무능과 의지없음에 분노한다. 이 모든 결과는 문재인과 민주당이 져야 하지만 정치는 국민을 보고 하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는 개인이 하는 게 아니라 세력이 하는 것이다. 문재인에 대한 비판과 평가는 냉정하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미성숙하고 자기보호에만 관심있는 겁쟁이 취급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엄밀히 말해 정치가가 아니라 행정가다. 그래서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지 학습했고 그 대안으로 이재명을 선택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재명이 당선되었다면 문재인은 법과 제도, 원칙에 충실한 성군으로 평가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노무현때도 문재인때도 단지 대통령 하나만 바꿨을 뿐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렇다면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을 뿐인데 왜 우리는 떨고 있는 것인가. 윤은 법과 제도, 권한을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헌신짝처럼 걷어찰 것이 뻔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닌가. 그렇다면 문재인도 그렇게 했어야 한다는 것인데 결과적인 진단일 뿐 문제로 지목되는 그 시점 시점으로 돌아간다 해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법과 원칙이 폐기되었다는 이유로 탄핵하고 탄생한 정부는 철저하게 법과 제도위에 서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문제는 민주당 의원들이고 180석이나 얻은 게 독이었던 것이다. 총선이 끝나고 시험을 못보고 반성하는 것은 만년 꼴찌를 벗어나지 못한다, 시험을 잘 봤을 때 성찰해야 진짜 우등생이 될 수 있다고 썼다. 당시 열린민주당의 중요성을 도외시한 몰빵론을 비판했을 때 많은 비난을 들었다. 어쩌면 180석을 얻고 자화자찬만 했던 것에서부터 오늘은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한 결과가 나쁘다 하여 모든 것을 문재인에게 책임을 물어 마치 금치산자인 양 비하하는 것은 결코 도움이 안된다. 문재인을 성토하고 너도나도 돌팔매질을 하고 나면 조국을 공격할 것이고 추미애도 먹잇감으로 내어주게 될지도 모른다. 평가는 나중으로 미뤄도 된다. 남은 50여일 임기와 172석으로 무엇을 할것인지 논의하는 것으로도 벅차다. 그 어느때보다 지금은 한마음으로 터진 둑을 보수하는 방법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나는 문재인을 탄핵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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