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일 변호사의 법률상담소]당신을 근로자로 인정합니다
- 칼럼 / 김담희 / 2018-02-23 13:26:26
근로자 인정 여부와 근로관계 종료.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GettyImagesBank이매진스] |
얼마 전부터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체육시설 한군데를 다니기 시작했다. 대략 한달 정도 했을까. 운동을 가르치는 강사님이 조용히 부르더니 뜻밖의 법률상담을 청해왔다. 직업이 변호사인지라 운동복 차림에도 하릴없이 상담을 하게 됐는데 그 내용인즉 해당 강사님이 10년 이상 해당 체육시설에서 강사일을 해오던 중 개인 사정으로 이직을 하게 됐는데 혹시 퇴직금 같은 걸 받을 수 있나 하는 것이었다.
사정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어보니 해당 기관과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업무위탁계약서(위임계약서)를 체결했고 수강생들의 수강료의 일정 부분을 강사료로 받고 있었으며, 제세공과금 역시 근로소득자의 그것이 아니라 별도의 사업자에 준해 납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해당 시설을 운영하는 기관은 당연히 강사들을 근로자가 아니라 별개의 거래 사업자나 협력업체 같이 취급하고 강사직을 그만두더라도 일체 퇴직금 등은 지급하지 않는 상황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해당 기관은 강사들에게 일정시간에 출근해 강좌를 하도록 하고 있음은 물론 각종 복무규정 등을 상세히 둬 업무 수행에 대해 꽤 구체적인 관여를 하고 있었고, 강좌의 구성 등에 관해서도 일체 강사의 재량에 따른 운영이 아니라 적지 않은 간섭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강좌의 특성상 출퇴근 시간에 일부 제한을 두는 것만 가지고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규에 따른 근로자인지 여부를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저간의 사정을 볼 때 근로자가 아니라고 단정할 이유도 없는 사안이었다.
사실 우리 근로기준법은 제2조 제1호에서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추상적인 규정을 두고 있을 뿐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지 그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에 따라서 우리 대법원을 비롯한 각급 법원의 판결례에서는 앞서 말한 강사님과 유사한 처지에 있는 많은 업무종사자들에 대해 사안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근로자로 인정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의 판단이 엇갈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와 같은 법규정상 그리고 법해석상의 공백 때문인지 실제 근로현장에서는 실질적으로는 분명히 근로관계임에도 근로관계로 보여지기 않기 위해 적잖은 '잔기술'을 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로 인해 우리 강사님과 같이 많은 '실질적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소중한 '근로 3권'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필자가 최근에 승소로 이끌었던 채권추심원에 관한 몇 가지 사례 역시 이러한 회사 측의 '잔기술'에도 불구하고 그 운영의 실질이 '근로관계'였음을 법원이 인정했던 것으로서, 회사 쪽에서는 다른 지점의 채권추심원들이 근로자로 인정된 '확정판결'이 있음에도 급여 지급의 형태나 제세공과금 부담 형태를 가지고 끝까지 근로관계를 부정했던 사례였다.
이러한 법규와 현실과의 괴리를 잘 알고 있기에 우리 대법원 역시 대법원 2017. 1. 25. 선고 2015다59146 판결 등 다수의 판결에서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했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해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의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해 사측의 '잔기술'에 경종을 울리고 있기도 한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우리 강사님의 경우에 법률상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언급한 사정 이외에도 많은 쟁점들이 고려되고 검토돼야 할 것이다. 필자 역시 상담의 마지막을 '관련 사정에 대해서 좀 더 검토가 필요할 것', '법원에서 관련 사정을 종합해서 판단할 사항'이라고 맺을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 강사님을 비롯한 많은 '근로자'들이 자신의 지위에 대한 명확한 법률판단을 받고 그에 따라 헌법상 그리고 법률상 보장된 많은 권리들을 누렸으면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기왕에 근로자성의 여부가 다투어지지 않는 경우라도 자신의 권리가 잘 챙겨지고 있는지 근로자 스스로 주의깊게 살펴봐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근로현장에 대대적으로 도입돼 운영되고 있는 이른바 '계약직'에 관련해서도 혹시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취급 당하지는 않는지, 기간의 제한을 제외한 나머지 근로자로서의 권리는 잘 보장되고 있는지 챙겨볼 필요가 있다.
특히 '계약직'이라서 계약기간이 만료됐다고 만연히 퇴사를 하게 된 경우라면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서 기간만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거나,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볼 때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어 근로자에게 그에 따라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이에 위반해 부당하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라는 우리 대법원 2016. 11. 10. 선고 2014두45765 판결의 판시에 따라 혹시 자신에게도 이러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될 여지는 없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경제상황이 녹록치 않고 많은 기업의 사정이 여의치 않음은 우리 경제주체 모두가 알고 있는 공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인 당신의 권리만 일방적으로 배척될 이유는 전혀 없다. 근로자인 당신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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