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일 변호사의 법률상담소]아직도 덜컥 고소부터 하십니까?

칼럼 / 김담희 / 2018-01-25 09: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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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관계의 형사화 전략에 대한 단상
고소장 접수전 법조인의 조력을 받는 것이 위험을 최소화 하는 방법이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GettyImagesBank이매진스]

"변호사님. 빌려준 돈을 안 갚아서 혼쭐을 내주려고 고소를 했는데, 죄가 안 된다면서 저를 오히려 무고로 고소를 했어요" "변호사님. 저 사기꾼이 돈 갚는 대신 벌을 받겠다는데, 벌금 조금 얻어맞고 말 거 같은데 어떡하죠?"


송사를 많이 하는 변호사라면 한 번은 받아 봤음직 한 질문이다. 빌려준 돈을 채무자가 갚지 않고 있어서, 혹은 상대방을 믿고 투자했는데 돈을 날려버려서 형사 고소를 하겠다는 거다. 상대방이 돈이 있는 것 같은데 안 주고 있으니 형사 고소를 해서 구속을 해 놓으면 겁이 나서라도 빨리 갚지 않겠냐는 말이다. 그러면서 언제 얼마를 줬는데 언제까지 갚기로 해놓고 안주니 처벌해달라면서 앞뒤 말도 안 맞는 고소장을 덜컥 접수하고는 일이 뜻하는 데로 흘러가지 않으니 그제야 허겁지겁 변호사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민사 사건의 형사사건화는 늘 있는 일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건 해결의 유용한 전략 방향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변호사 아닌 비법률전문가의 잘못된 해결방법 유도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만 앞선 당사자의 잘못된 법률상식 때문인지 덮어 놓고 형사 고소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고 이는 변호사인 고소대리인의 법률적 조력 없이 당사자 명의로 덜컥 제출된 수많은 고소장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발생하기 쉬운 가상의 사례 하나를 구성해보자.


채권자 A 씨는 사업자금이 필요하다는 지인 B 씨에게 돈 1억 원을 빌려줬다. 1년 뒤에 갚겠노라 차용증까지 써준 B 씨는 빌려온 돈을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에 적절하게 사용해 위기를 넘기고 착실히 이자를 지급하고 있었으나 또 다른 위기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부도에 처하고 말았다. 채권자 A 씨는 원금을 받을 날짜가 다가오자 B 씨에게 연락을 취해보았으나 사업이 부도난 B 씨는 채권자들의 빚 독촉을 잠시나마 피해 보려고 지방으로 여행 아닌 여행을 가버려 만나기는커녕 전화조차 받고 있지 않다. 마음이 급한 A 씨는 형사 고소장부터 덜컥 접수했는데, 웬걸 담당 경찰관 이야기는 죄가 안 되는 걸 고소했다면서 핀잔을 준다.


이것이 전형적인 대여금 사기 고소 사건이다. 실제로 이와 유사한 많은 대여금 미변제 사건을 많은 채권자가 사기 고소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 우리 법제에서 대여금 미변제가 형법상의 사기죄가 되기 위해서는 최초에 돈을 빌려올 당시부터 돈을 갚은 생각도 능력도 없어야 성립한다. 이를 법률용어로 "차용 당시부터 변제의 의사와 능력이 없었다"고 표현한다. 문제는 적지 않은 대여금 미변제 사건이 위에서 말한 '최초의 변제의사 및 능력 부재'가 아니라 '차용 이후의 사정 변경에 따른 변제 능력 부족이나 상실'이 원인인 경우이고 이는 형법상 처벌되는 '대여금 사기'가 아니라 단순한 '민사상 채무불이행'일 뿐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돈을 갚지 않는 것만으로는 죄가 안 되는 것'이다.


때문에 대여금 미변제를 사기죄로 처벌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돈을 빌려준 사실이나 돈을 변제하지 않은 사실만 들어 앞뒤 가리지 않고 덜컥 고소장부터 접수할 것이 아니라 채무자가 최초 차용 당시에 어떤 경제적 형편이었는지, 차용해 사용할 용처(用處)는 무엇이었으며 실제 그 계획대로 사용했는지, 차용 과정에서 다른 허언(虛言)이나 거짓말을 한 것은 없는지,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입증할 증거들은 무엇이 확보돼 있는지 등을 주도면밀하게 검토해야 하고 이를 수사할 수사기관이 충분히 납득해 파악할 수 있도록 설득력 있게 구성하고 제시해야 한다.


고소장의 기재될 단어 하나 문구 하나도 허투루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고소한 사실이 죄가 안 된다면 사안이 가벼워 단순한 사실의 오인으로 운 좋게 끝날 수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실수해 고의적인 허위의 고소로 비치게 되면, 채무자의 무고(誣告) 역공 때문에 돈은 돈대로 날리고 몸은 몸대로 피곤한 2중의 불이익마저 받을 우려도 있는 것이다. 위에서는 비록 대여금에 관한 사기 고소 사건만을 예시했지만, 보관한 돈이나 물건을 타에 전용(轉用)했다면서 제기하는 '횡령 고소'나 신뢰 관계를 저버리고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는 '배임 고소'와 같은 경제범죄에서도 면밀한 법률검토와 증거 확보 위에서 형사절차화의 수단을 고려하고 활용해야 함은 당연한 말씀이다.


필자 역시 실제 위 사례와 유사한 많은 사례에서 뒤늦게나마 필자를 찾아온 적지 않은 채권자들을 위해 종전에 무질서하게 작성 제출된 고소장을 손보아 고소이유를 보충하는 형태로 어그러진 절차를 바로 잡고 그에 따라 불기소나 무죄 될 사안을 간신히 본 궤도로 올려놓거나 아니면 불기소 이후 적정한 항고 제기를 통해 재기 수사 명령을 끌어내거나 그도 늦었다면 적정한 방어방법을 통해 무고의 역공만은 차단해 낸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최초 고소 당시부터 면밀한 법률적 검토와 조력이 있었다면"이라는 아쉬움을 지워낼 수가 없었다.


물론 사안에 따라 비록 민사 해결이 종국적인 목표임에도 굳이 형사적인 절차를 활용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앞서 말한 대여금 사기 고소 역시 적지 않은 경우에서 형사절차의 활용을 전략적으로 고민할 필요도 있다. 잠적 중인 채무자의 행적을 찾는다거나 채무자의 해외 도피를 일응 막기 위해서, 아니면 저간의 사정을 전혀 알 길이 없어 그 전말을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민사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 경우에 따라 아주 조심히 형사 고소와 수사라는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 민사적인 해결이 종국적인 관심사라면 일단 민사법 절차가 마련해 놓고 있는 다종다양한 수단을 검토해 활용하는 것이 우선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형사 절차라는 것은 국가의 형벌권이라는 공권력을 발동하는 절차로서 범죄의 발견ㆍ확인과 범인의 처벌이라는 공적 목적을 위한 것이지, 사인의 채권 추심과 같은 사적 절차로 사유화(私有化)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쉽게 생각하고 알고 있는 것보다 우리 민사법 절차에는 우리의 재산과 권리를 구제해 줄 수 있는 제법 유용한 절차들이 많이 있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 억울한 사연만을 담아 고소장을 들고 수사기관을 달려가고 있는 당신을 위해 또 한 번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다. 부디 변호사를 법률전문가를 잠시라도 먼저 만나 조력을 받으시라고. 이 간단한 선택이 당신의 채권과 재산을 지키는 매우 간단한 수단이며, 혹시 모를 당신의 형사적 위험을 최소화하는 충분한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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