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혜원 칼럼] '그 질문 빼세요' 사건
- 칼럼 / 진혜원 / 2022-11-02 13:52:50
[칼럼] 진혜원 검사= 몇년 전 한 지방에서 근무할 때 의욕있고 유능한 학교 후배가 no.1과 동향이라고 추정되는 사유로 소위 '특수' 전담을 맡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뇌물을 받았다는 공무원과 줬다는 사업가를 모두 동일인인 전직 검사장 출신이 변론하는 사건을 조사중이라는 후배가 갑자기 메신저를 보내왔습니다.
변호사가 한 사람이기 때문에 뇌물을 받았다는 공무원을 조사할 때 '변호사비는 누가 대주는 거냐'라는 질문을 했고, 그 공무원이 대답하기 전에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더니 갑자기 부장검사가 메신저를 보내 "그 질문 빼세요"라고 지시했다는 겁니다.
직무상 관계있는 공무원에게 변호사비를 대납해주는 것은 또 다른 수뢰가 되기 때문에 조사가 필요한 사항입니다.
그러나, 전직 검사장의 수익에 관련되는 부분이라서였는지(정확한 이유는 느낌으로만 전달되는 느낌적인 느낌) 해당 질문을 조서에서 삭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후배는 그 자리에서 "그런 식으로 하면 사표내겠다"고 하고 실제로 사표를 내버렸습니다.
후배가 사표를 낸 경위가 알려지면 안돼서 그랬는지 다음 인사때까지 사표 수리를 미루는 것으로 결정됐고, 그 후배의 동향, 고등학교 동문 선배였다가 여성 최초로 서울지검 부장검사까지 하고 퇴직한 선배 검사까지 내려와 후배의 사직을 만류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나, 후배는 결국 뜻을 굽히지 않고 사직했습니다.
조서는 일제시대, 국어를 모르는 일본 검사를 위해, 지금 계장 비슷한 역할을 하던 한국인들이 독립투사들로부터 자백을 받은 것처럼 꾸며넣은 문답서 문화를 그대로 답습한 결과입니다.
최근 우렁각시인지 우동규수인지 수사기관에서 진술했다는 내용을 누가 자꾸 유출하고 유출할 때마다 내용을 바꾸는데, 조서라는 게 상급자가 '그 진술 빼세요', '그 질문 빼세요'로 간섭하는 문서라서 그렇습니다.
지금은 당사자가 법정에서 '조사받을 때 그렇게 말한 적은 있지만 뻥입니다'라고 하면 조서의 효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조서의 효력을 유지하기 위해 법정에서 말을 바꾸지 못하도록 인질극이나 별건극을 벌일 동기가 충분해집니다.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사 결과에 이해관계 있는 당사자가 기소까지 하기 때문에 이해충돌 상황이 항상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기소한 검사가 판결까지 하는 상황이랑 동일하다는 의미입니다.
수사와 기소 분리를 뒤에서 몰래 저지하던 분들이 지금 시청앞 광장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계기로 마치 자기가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냥 행세하는 모습은 혐오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스 슬로운'이라는 명작에서 민주주의의 진정한 적은 mole이라는 명 연설이 나오는데, 욕망과 힘에 솔직한 왕당파가 부러우면서도 아닌 척하면서 mole로 활동하는 분들을 시민들이 모를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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