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주 칼럼] 잼버리의 파행을 보면서..
- 칼럼 / 이언주 / 2023-08-06 20:43:30
[칼럼] 이언주 전 국회의원= 미국, 영국, 싱가폴... 그나마 스카우트 전통이 있는 나라들은 다 철수한다고 한다. 자국민 안전을 위해서라면 외교적 불편함이나 체면쯤은 아랑곳않고 단호하게 결정하는 모습에서 저런 게 선진국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도 저렇게 되어야 한다.
영외활동 거의 취소했다는데 굳이 영내에 붙들어서 아이들이 야영지 땡볕에 널부러져 시간 때우며 고통당하고 벌레에 뜯기며 잘 필요있나? 행사를 위한 행사, 주최측 체면세우기 위한 행사를 해선 안된다. 어차피 실패한 거... 미련 갖고 더 큰 사고 내지 말고 즉각 Contingenycy Plan으로 가야 한다.
야영을 취소하고 남은 비용으로 숙소를 잡아주고 관광을 시킨다던가 문화체험이라도 하게 해야 한다. 냉동탑차니 냉방버스 정도로 해결될 일이 아니니 그런 지원도 Contingency Plan에 써야 한다.
이번 잼버리의 파행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이 행사만이 아니다. 이태원참사, 수해, 묻지마살인... 일련의 파행적 현상들의 원인이 유사한 점이 너무 많다.
첫째, 국가시스템이 무너졌다.
위에선 큰소리만 쳤지 실무를 전혀 모르니 관리가 안된다. 아래서는 재량이 전혀 없고 문제되면 실무자들만 처벌받고 책임을 지니 명령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아무도 안 움직인다. 마치 조선 후기 같다.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크고 작은 사고는 더 일어날 거고 나라는 점차 쇠락하다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것이다. 이번에도 전정권 탓하고 지방 탓하고 일선 공무원들 압색하겠지. 그리고 다 떠넘기겠지. 자신들은 호통이나 치면서. 그 짓거리를 그만두지 않으면 갈수록 악화될 거다.
여가부장관·행안부장관·문체부장관이 전부 공동조직위원장인데, 여가부장관의 기자회견 때의 어리벙벙한 모습을 보면 스카우트 옷만 입었지 뭐가 뭔지도 모르는 듯하다. 행안부장관은 사전답사 왔으면 물웅덩이의 위생문제, 천막샤워실, 샤워시설과 화장실, 의료시설 등 인프라 규모를 보고받았을 거 아닌가? 간단한 계산만 해봐도 4만여 명을 수용하려면 인당 하루 30분만 써도 화장실, 샤워실 하루 10시간 동안 1곳에 20명이 쓸 수 있으니 적어도 2천곳이 필요했는데 턱도 없었는데 확인도 안했다.
자기가 뭘 점검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쓱 둘러보고 갔다. 호스 물 나오는데 뜨거우니까 온수까지 나온다며 칭찬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다...살면서 공부만 하고 시험만 잘봤지, 회사 팀장도, 군대 지휘관이라도 해봤나, 아니 동호회 여행이라도 가봤으면... 그런 사회생활 자체를 해본 적이 없는 듯하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축사하고 도열하고 하기 전에 도착 하자마자 찜통더위가 실감 났을텐데 '아이고, 내 축사 같은 건 다 생략하고 행사 빨리 끝내'라고 지시 했어야 했다. 웬만한 구청장 행사도 그게 상식이다. 한번도 청중을 고려해본 적이 없구나, 철저하게 자신이 명령하면 복종하는 전근대조직에서 살아온 모습이었다. 더 심각한 건 누구 하나 그런 얘길 하질 않았단 거다. 모르거나 두렵거나 귀찮아서겠지.
둘째, 행사유치를 부족한 지역인프라 구축의 계기로만 삼으려했지 행사 본연의 목적은 관심도 없었다.
개발도상국적 현상이다. 지금이 80년대인가? 새만금개발은 그것대로 하고 잼버리는 잼버리대로 해야 했다. 예산 3000억 중에 2천억여원을 농림부 부지조성비로 썼다. 샤워실을 천막으로 만들고 선반은 무너지고 화장실 청소도 안될 정도로 예산이 없었나? 애초에 그늘도 없는 간척지 새만금을 야영지로 선정한 게 잘못되었다. 무주, 평창, 홍천, 제주도 등등 야영지로 적당한 곳이 없는 게 아니다. 무슨 거창한 국제행사 하나 유치해서 그걸 빌미로 지역발전을 도모해보려는 생각이야말로 전형적인 개발도상국 사고다.
부산 2030엑스포도 마찬가지다. 행사를 빌미로 온갖 홍보예산이 물쓰듯 쓰이고 있다. 중앙예산은 눈먼 돈이 되어가고 있다. 부산의 각종 현안은 아예 뒷전이 되었다. 모든 인프라가 그 행사와 연결되어 있다. 엑스포의 본연의 목적은 관심도 없다. 진정성은 없고 그런 걸 빌미로 예산따고 홍보하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얄팍함이 가득해 부산 출신으로서 속상하다.
셋째, 장소의 문제도 그랬지만 다들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다.
K팝 같은 건 폐영식 때 해서 마지막에 즐기면 되는 거였다. 개영식땐 참가국 간단히 소개하고 주의사항 공유하고 오느라 지쳤을텐데 빨리 끝내야 했다. 잼버리 자체보다 K팝 홍보에 치중한 결과다.
대통령 때문에 기다리고 한 것도 마찬가지. 책임도 안질거면서 왜 아이들 기다리게 하고 지기홍보에 행사를 이용하나? 옛날에는 높은 양반들이 오면 그게 영광이고 그런지몰라도 시대가 달라졌다. 자칫 민폐다. 그렇게 경호와 보안이 걱정될 거면 짧은 동영상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나. 지금이야 전부 책임회피에 급급하지만 다들 숟가락 얹으려 공동조직위원장만 5명이고 그중 셋은 장관들이다. 그런데 상황이 안좋아지니 다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스카우트총재는 한번도 못봤다. 만만한 사무총장에 곧 없어질 여가부장관만 혼난다. 성공했다면 서로 나와서 브리핑하려 했겠지. 속 보이는 코미디다.
이젠 겉모양만 신경쓰는 체면치레 같은 건 좀 그만 하자. 행사는 그 자체로 그 본연의 취지에 집중해야 하는 거다. 잼버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야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교류하고 꿈을 펼치는 장인데 주객이 완전히 전도되었다. 스카우트가 들러리가 되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세계스카우트연맹이나 퇴영한 나라들이 할 거 같아서 미안하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진정성이나 정직함, 순수함, 본질에 대한 생각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든 가짜사회, 겉만 화려한 사회, 남 등쳐 먹고 이용해야 성공하는 사회, 노력 안하고 숟가락 얹는 게 최고인 사회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니 국민들은 각자도생할 수 밖에.. 원래 한국이란 나라가 그랬나. 한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근면성실한 사회, 민주화로 대변되는 대의명분에 자신을 던지는 사회,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는 사회 아니었나?
그런데 지금 이 모습은... 너무 서글픈 자화상이다.
![]() |
▲이언주 전 국회의원.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프레스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