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판결에 대해 돌아보는 성폭력의 정의
- 칼럼 / 김혜겸 변호사 / 2018-08-21 1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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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전 지사의 사건을 통해 돌아본 상폭력의 정의와 사건들. 사진과 기사는 무관.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
결국 이번 선고는 같은 죄명의 판결 선례의 추세를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어 아쉬운 부분이 있어 이번 칼럼을 통해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성폭력의 정의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힘의 차이를 이용해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힘의 차이이다. 힘이란 ▲ 나이 ▲신체의 크기 ▲ 지적 수준 ▲ 지위 등에 의해 행사될 수 있는 상대적 우월성을 의미하며 본 사건에서는 지위상의 차이가 힘의 차이로 여겨지고 이로 인한 간음이 동의에 의한 간음인 것인지 여부다. 형법 규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가 있으나, 지금까지 본 조항을 통해 처벌받은 것은 피해자가 미성년자이거나 지적장애인이었을 때 외에는 없었다.
법원은 피해자가 성인일 경우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비교적 자유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위력 등에 의한 간음이 강제적이라 판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일상생활 속에서 과연 피해자들이 지위상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할 것인지는 의문이고, 이번 사건에서도 그게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법원의 판단에 귀추가 주목됐다.
1심 법원은 안 전지사의 지위로 인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위력은 존재하나, 피해자의 일련의 행동 등을 보았을 때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자의적으로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아 무죄를 선고했다.
이때 법원은 피해자의 여러 가지 행동을 구체적으로 설시했는데, 그 중 몇 가지를 보면 피해자가 안 전지사의 요구에 대해 고개를 숙인 채 가로젓고 ‘아니다’라고 한 소극적인 표현에 대해 피해자의 평소 업무태도, 성행으로 볼 때 무의식적으로 피고인을 경계, 회피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고, 가까운 제3자와의 사적인 대화에서조차 피해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단서도 전혀 남기지 않고 평소와 같이 가해자를 적극 지지하는 취지로 대화를 나눈 점은 피해자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설시했다.
위력의 존재에 대해 인정한 것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판결에 해당하고, 부차적인 전체 기록과 증거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죄의 성립 여부에 대해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일부 판결문의 설시만을 볼 때 실제 위와 같은 지위에 있는 자들의 요구에 대해 강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얼마 전 필자가 고소 대리를 맡은 상사의 신입 여직원의 강제추행 사건 조사과정에서 수사기관과 상대방 대리 역시 유사한 취지의 질문과 의문을 제기했다. “3차까지 이루어진 회식자리에서 2차부터 추행행위가 있었다면 3차까지 가지 않고 먼저 일어나도 되지 않냐”라는 취지의 질문을 하는데 그 순간 피해 여직원은 멍한 표정으로 “제가 다 잘못한 건가요 그럼…, 제가 일어나지 못한 게 잘못이네요”라고 말하며 자신을 자책했다.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이 상사의 요구에 대해 강하게 거부 의사를 표하며 나올 수 있을까? 상사와 선임이 있는 소규모의 모임에서 상사가 가지 않음에도 먼저 가겠다는 의사를 표하며 갈 수 있을까? 이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부터 상사의 요청에 강하게 거부하는 자로 낙인찍힐 것이 명확한데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왜 소극적은 No는 No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인가, 피해자는 피해를 보면 업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피해자로서의 행동을 취하는 것인가, 판례를 보며 아직도 변하지 않은 피해자에 대한 인식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최근 비동의 간음죄의 신설에 대해 국회에서 논의 중이라 하지만 비동의 간음죄의 신설에 대해는 이렇게 급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고 오랜 기간을 거쳐 사회적 토의 끝에 결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동의 간음죄는 No를 No가 아닌 부끄러운 Yes로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정서에 아직 맞지 않고, 여성의 지위향상과는 별개로 아직 강하게 행동하면 “여성스럽지 못하다”, “왜 이렇게 드세냐”는 이야기를 듣는 현재 우리 사회상에서 본 범죄는 사회상과 동떨어진 공감대가 전혀 없는 죄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피해자의 행동에 대해 아직도 선입견이 있는 현실에서 위 죄는 성립 여부만으로도 큰 혼란을 줄 수 있어 법적 안정성이 무너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성요건의 모호함으로 실제 위 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가능성도 적지 않아 위 죄의 신설로 인해 자칫하면 여성과 남성의 대립각도가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이다. 외국에서는 왜 비동의 간음죄가 신설됐는지, 그들의 정서는 어떠한지를 우선으로 파악한 뒤 정서적 공감을 먼저 이룬 뒤에 위 죄를 신설해야 할 것이고 그 전에 지금 법 규정에 존재하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의 해석을 넓혀야 한다 생각한다.
그 정서적인 공감대 형성의 가장 우선은 사회 내에서의 위계질서의 변화 및 피해자에 대한 관념적인 생각에서의 탈피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두드러지고 여성에 대한 인식은 변하고 있지만, 아직 사회에서의 위계질서가 변하지 않고 있는 지금의 시대상에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됐으니 그 향상된 지위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평소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피해를 당할 때도 당차게 거절하고 나와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피해 이후에 회사에서 문제가 되지 않게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면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인지, 여러 가지 인식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나부터도 먼저 위와 같은 선입견을 가진 것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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