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겸 변호사의 법률상담소]성범죄에 관한 인지 변화

칼럼 / 김혜겸 변호사 / 2018-05-02 14: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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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서 피해자 자유로운 의사 하에서 동의 여부 중요해
성범죄에 관한 성인지가 변화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GettyImagesBank이매진스]

최근 극변하는 사회에서 법체계와 인식도 많이 변해가고 있다. 그중 가장 문제 되는 것은 성범죄이다. 일반적으로 폭행과 협박을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성폭력문제가 대다수였으나 요즘은 '데이트 폭력', '부부 강간' 등 가장 가까운 지인에게서도 문제되는 경우가 다수 있으며 이들은 가까운 관계였기 때문에 폭행과 협박이 없는 경우도 일부 존재했다.


아래 사례를 살펴보면서 최근 법원에서도 성범죄에 관한 인지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확인해보자.


A는 B와 사귀었으나 헤어진 사이였고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가던 중 두 사람은 만나게 됐다. 반가운 마음에 술자리를 함께 하던 중 멀리서 온 B를 위해 A는 모텔을 예약해주었고 밤새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이 늦어져 B를 모텔까지 바래다줬다.


방에서 이야기를 하고 나오려던 순간 B가 갑자기 A를 붙잡고 이야기를 더 하고 가자고 말했다. 아직 B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던 A는 그녀가 자신을 붙잡는 것이 관계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관계를 시도했다.


그러나 A의 생각과 달리 B는 관계를 거부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 B가 비틀어 관계에 실패했고 B는 "밑에는 안돼"라고 이야기했지만 A는 이를 남녀사이 내숭이라 생각해 다시 관계를 시도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 A가 관계를 가지려던 중 B가 "오빠, 이건 강간이야"라고 이야기하자 그제야 A는 자신의 행동을 멈추고 이후 모텔을 빠져나왔다.


함께 모텔을 나온 A와 B는 B의 친구가 있는 장소까지 A가 차를 타고 바래다 주면서 그날의 상황이 종료됐고 이후 B는 A를 강간죄로 고소해 수사가 진행됐다. A와 B는 교제당시에도 관계가 없었으며, A는 관계 후 B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위와 같은 사실관계 하에서 A에게 과연 강간죄가 성립할 것인지 문제됐고, 폭행과 협박이 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심과 2심은 모두 A에게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의 진술과 같이 '강간'이라는 말만으로 즉시 성행위를 멈출 정도였다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의사를 오해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피고인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피해자를 제압하고 강제로 성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지 상당한 의문이 들며, 이에 관한 피고인의 변소를 쉽게 배척하기 어렵다"고 보아 무죄취지로 사건을 환송했다.


비록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이 됐으나 위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1심과 2심은 모두 A에게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성인지 교육을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자유로운 의사 하에서의 동의'여부이다. 실제 최근 문제되는 이윤택, 안희정 사건에서도 문제되는 것으로 관계에 있어 피해자의 동의가 있더라도 피해자의 동의가 과연 실제 자유로운 의사 하에서의 동의였는지를 확인해야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관계 직전 상대방이 하기 싫다는 식으로 의사표시를 한다면, 동의가 없는 것으로 보아 범죄의 성립을 인정한다. 위의 사례 역시 피고인은 피해자의 동의가 있다 오해했으나 엄격하게 본다면 피해자의 동의가 있다고 추단하기 어려우며 그렇기 때문에 1심과 2심법원은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실제 대법원 선고 이후 학계에서는 '모텔에 들어간다는 것 만으로 성관계의 동의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문제있다'는 취지의 비판이 강하게 제기됐고, 젊은 학자들은 이러한 미국식 성인지 감수성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강간죄의 성립을 넓게 인정해야 한다 주장하고 있다.


본 칼럼을 읽는 독자들이 염두에 두어야할 것은 앞서 본 것과 같이 최근 성범죄에 대한 인지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젊은 학자들과 젊은 법조인 측에서는 이러한 성인지감수성을 토대로 처벌기준을 정한다는 것이다. 명시적인 동의 없이는 최대한 문제될 여지를 두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어느 정도 사회적 유대관계가 성립돼있다 하더라도 이를 두고 함부로 추측해 관계에 대한 동의까지 이루어졌다 보는 것 역시 안된다는 것이다.


만약 동의가 있더라도 상대방과 내가 동등한 관계 하에 동의가 이루어졌는지 역시 염두에 두고, 상사와 부하의 관계 등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을 경우 명시적 동의는 적법한 동의로 인정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하도록 한다.


이러한 성인지 사고의 변화는 마치 내가 잠재적 범죄자냐 라는 식의 비판 또한 가져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추세를 알려주면서 우선적으로 칼럼을 읽는 독자들에게 최대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기고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생각하며 본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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