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일 변호사의 법률상담소]법인인 듯, 법인 아닌, 법인 같은 상대방

칼럼 / 김담희 / 2017-11-28 19: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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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거래와 법인격 부인에 관한 단상
계약시 법에서 '법인'과 '개인' 별도 인격체를 인정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GettyImagesBank이매진스]

한국 사회는 유난히 '사장님'이 많다. 식당에만 가봐도 왠만한 손님들은 다 '사장님'이시다. 이건 그만큼 현재 한국 사회에 '회사(會社)'의 대표자인 장(長)이 많다는 것이고 그만큼 한국 사회에 '회사(會社)' 즉 법인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현재 거래계에서 '사장님'들께서 운영하시는 '회사(會社)'는 법률상으로 상법상의 회사를 말하는 것이고 그 중 십중팔구는 '주식회사(株式會社)'로서 법인이다. 우리 법체계는 '자연인(自然人)'으로서의 이른바 '개인' 외에 법이 인정한 별도의 인격체인 '법인'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동일하다.


그리고 법에서는 그 '법인'을 구성하는 지분이나 주식 등을 소유하고 있는 주주 또는 지분권자 등 오너(owner)와 해당 법인 자체를 엄격하게 분리하여 법률관계를 인정하고 있다(소위 '법인격 준별'). 다시 말해 거래의 상대방 즉 법률관계를 맺는 상대방 당사자가 '법인'이라면 그와의 법률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리나 의무는 그 '법인'의 대표나 주주 또는 지분권자와 사이의 권리나 의무와는 엄격하게 구별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엄격한 법리적 관계가 실제 실생활과는 일정한 괴리감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법률적 정확성(正確性)에 민감하지 않은 우리 나라의 법문화에서는 사장님이 그 회사이고, 그 회사가 곧 사장님인 경우가 허다하다. 부동산을 매매할 때, 물건을 거래할 때, 점포 하나를 빌릴 때, 금전을 차용하거나 대여할 때 그 외에도 수많은 거래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법률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 관계의 상대방을 '개인'과 '법인'으로 엄격하게 구분해 맺지 않는 것이다.


돈을 빌려줄 때는 김사장님을 믿고 김사장님 손에 돈을 쥐어 줬지만 차용증은 김사장님이 운영하는 회사 즉 법인으로 작성하고 있는 것이 거래의 현실인 것이다. 이러한 실사례는 그 법인의 규모가 적을수록, 그 거래의 규모가 작고, 거래방법이 단순할수록 많다.


필자가 현재 수행 중인 한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 사례를 보자. 김갑동(가명)씨는 중견회사를 정년퇴직하고 받아 든 퇴직금을 활용할 길을 모색하던 중에 부동산 개발 투자업을 한다는 친구 이을동(가명)으로부터 동계올림픽 개최에 따른 부동산 붐(Boom) 이야기를 듣고 월 1%의 수익율 또는 이자율을 보장할 수 있다는 약속에 따라 이을동에게 퇴직금 전부를 빌려주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며 귀동냥으로 들어 알고 있었던 것처럼, 비록 친구 사이이지만 차용증 같은 문서도 만들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아가 '공증'을 해두면 훨씬 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해 이른바 '차용증 공증'을 해뒀는데 해당 문서상으로 채무자는 이을동이 운영하고 있던 회사인 "주식회사 재병(가명)"이었다. 이후 한 1년 가까이는 꾸준히 이자가 지급되다가 갑자기 이자지급이 끊기게 됐고 이을동 역시 연락이 두절되어 버렸다. 수소문 끝에 확인해보니 위 ㈜재병이라는 회사는 이미 폐업한 상태였고 이을동 역시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다시 두 해가 지나 이을동이 외국 도피를 끝내고 한국으로 귀국해 다시 "주식회사 제병(가명)"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갑동씨는 자신의 대여금을 반환받고자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사연은 구구절절 하지만, 기본적으로 갑동씨는 을동씨에게서도 '㈜제병'에서도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것이 이른바 '법인격의 준별'이다. 만일 갑동씨가 조금 더 법리에 밝았더라면 위 차용증 공증 문서에 을동씨를 연대보증인이라고 명시해두었을 것이나, 실제 이 사례에서는 그렇지도 못했을 뿐더러 가사 그랬다고 하더라도 1년 가까이를 해외 도피를 해왔던 을동씨에게 재산이 있을리도 만무한 일이라 그 역시 무익한 것으로 결론날 가능성이 농후했을 것이다.


갑동씨의 사례는 일부 재구성을 한 것이나 우리 거래계에서는 이와 같은 사례가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억울한 사례에 잡을 지푸라기 하나로 우리 법리상 법인격 부인론이라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법인격 부인론은 쉽게 말해, 거래의 상대방이 A라는 법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배후에 숨어 행위하는 실질적 당사자인 개인 B의 법률적 책임을 인정하겠다는 것으로서, 대법원 1988. 11. 22. 선고 87다카1671 판결에서 처음 인정된 이래 발전돼 오고 있는 판례상 이론이다. 특히 최근에는 대법원은 물론 각급 하급심 법원에서도 활발히 거론되면서 그 적용의 요건도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있다. 적용 범위 역시 단지 해당 법인의 대주주나 1인 주주인 개인에 국한하지 않고 개인을 매개로 새로운 다른 법인의 책임까지 인정하는 등 폭이 넓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갑동씨의 사례에서도 필자는 법인격 부인론을 이용하여 단순히 을동씨의 책임만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을동씨가 새롭게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는 ㈜제병의 책임까지도 묻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재병과 ㈜제병의 명칭상의 유사성 뿐만 아니라 주된 사무소의 동일성, 직원이나 주주 등 인적 구성의 관련성, 신규 법인의 인수 경위나 동기, 양자의 세무 회계적 운영실태 등 판례상 설시되고 있는 법인격 부인론 적용 요건 구비를 위해 다각도의 입증을 시도하여 적지 않게 이루어 냈으며, 이 과정에서 상대방 측의 협상 제의를 받고 있는 상황이기도 한 것이다.


비록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는 아니지만, 갑동씨와 같은 억울한 많은 사례에서 검토와 활용이 필요한 것이 법인격 부인론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물론 굳이 법인격 부인론 말고도 상법 제185조의 이른바 '사해설립 취소소송'이나 다른 유사한 명문상의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보아야 하겠지만, 그러한 명문 규정이 미쳐 커버(cover)해주지 못하는 많은 사례에서 법인격 부인론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적용할 필요가 적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차제에 법인격 부인의 요건이나 효과 등을 명시하여 일반규정으로라도 명문화하는 방안도 입법론상으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현행 상법은 이른바 규제 완화의 명목 하에 '주식회사'에 대해 '법인'이라는 별개의 인격과 거래 행위 자격을 부여하면서도 이를 책임지기 위한 주주(발기인) 구성이나 수의 제한도, 설립시의 자본금 규모의 제한도 모두 없앤지 오래다. 때문에 해당 주식회사와 거래한 상대방의 보호를 위한 장치로 법인격 부인이나 1인 주주 또는 대주주의 연대 책임 문제와 같은 보다 획기적인 방안의 명문화를 고민해 볼 필요도 없지 않을 것이다.


법인인 듯, 법인 아닌, 법인 같은 상대방과의 거래로 고민하고 있는 당신. 아직까지 희망은 있다.


법무법인 광안 오현일 변호사 프로필.[사진=법무법인 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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