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숙의 세상돋보기] 21세기 예송논쟁?

칼럼 / 강미숙 / 2022-09-28 21: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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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미숙 소셜칼럼리스트= 21세기에 느닷없이 17세기 예송논쟁이 또 호출되었다. 민주당의 영국 조문 관련 비판에, 국힘당 조해진 의원은 언제부터 우리 정치가 남의 장례식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냐고 비난하고, 박정하 국힘당 수석대변인은 48초에 이은 새끼발언에 대한 비판을 백성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이 예송논쟁으로 날을 새던 조선시대 권력다툼이 초래한 역사적 비극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한미혈맹을 이간시키는 외교 자해행위라고 비난했다.

요 며칠 우리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국가수반의 쪽팔리는 외교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루한 여당, 그리고 무력으로 틀어막겠다는 공안대통령을 마주하고 있다. 온 국민이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대한 블랙코미디의 바다에 빠졌다. 도대체 저들의 천박한 상상력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아가들 앞에서 두 눈을 가렸다가 손을 펼치며 까꿍- 하는 놀이는 여러 번을 반복해도 아가들은 까르르 웃는다. 아가에게 상대방이 얼굴을 가리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나타났으니 신기할 수밖에. 이런 걸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아가들도 수십 번 반복되면 웃음소리가 낮아진다. 그런데 지금 하는 짓은 어른이 자기 눈을 가리고 봐 안 보이지? 아무것도 없는데 웬 호들갑이야! 하는 꼴이다. 눈 가리고 아웅 수준도 못 된다.

선의의 거짓말이 통하는 나라여서 그런지 정치인과 대통령의 거짓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조롱거리로 회자되고 비판하는 이들은 사회혼란을 부추기고 국익에 반하는 자들이라 몰아붙이더니 위대한 48초 회의로 주요현안을 처리한 윤가가 돌아오자 왜곡보도, 명예훼손으로 기자들을 겁박한다. 한발만 더 나아가면 메카시의 광풍이 불어닥칠 지도 모르겠다. 실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믿는 윤석열식 파시즘이 본색을 드러냈다.

서로 다른 의견이 격돌했을 때 논리가 빈약한 쪽은 종종 예송논쟁에 빗대 논쟁이 나라를 말아먹는 것처럼 호도하곤 한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것은 거짓말로 일관하는 대통령과 그 주변의 기만적인 태도라는 특수성이다. 그리고 그들이 예로 든 예송논쟁은 무리한 정권교체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새끼, 바이든 신드롬을 마치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기득권의 샅바싸움이라는 식으로 예송논쟁에 빗대는 것은 차라리 모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예송논쟁이 무엇인가. 아들(효종)의 장례에 어머니(효종의 계모 자의대비)가 상복을 3년 입을 것인가 1년 입을 것인가, 또 며느리(효종비)의 죽음에 시어머니(자의대비)가 1년 상복을 입을 것인가 9개월 입을 것인가 하는 일이었지만 상복은 드러난 명분이었을 뿐 본질은 왕권과 신권의 주도권 싸움이다. 이것을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당쟁으로만 몰아가서는 안된다. 후대에 오늘의 논쟁을 맥락은 거세한 채 '바이든'이 맞는지 '날리면'이 맞는지를 밝히는 논쟁으로 소환한다면 땅속에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효종의 사망으로 벌어진 1659년 기해예송에서 현종은 할아버지(인조)와 아버지(효종)보다 우위에 있던 서인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효종이 차남이므로 ‘주자가례’에 의거, 1년 상복을 입으면 된다며 사대부의 예를 취한 것은 현종을 사대부와 동급으로 취급한 것이며 예법을 빙자한 신권의 과시였다. 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나 경직된 외교로 나라가 초토화되었음에도 변화와 개방을 주장한 소현세자 대신 오로지 북벌을 외친 봉림대군(효종)이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기로는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종이 재위 15년간 정책과 군사력, 국정운영을 장악하고 있는 서인정권을 제어하기 위해 남인을 등용했기에 1674년 효종비가 사망한 갑인예송 때는 남인이 승리한다. 왕권이 상대적으로 강화된 것이다. 하지만 현종의 사망으로 평화로운 붕당관리는 막을 내리고 예송논쟁을 지켜보며 성장한 숙종은 세 번의 환국으로 정권교체를 거듭하며 왕권을 강화시킨다.

정파간 싸움은 어느시대든 필연적인 것이지만 예송논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조가 조선의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은 채 개방을 외치는 소현세자를 버리고 북벌을 주장하는 봉림대군을 선택한 데 있다. 명청교체기의 국제정세를 도외시한 결과 광해군을 탄핵하고 전 정권과의 차별성만을 주장하다 삼전도의 굴욕을 치르고 왕권은 땅에 떨어진 이후의 일이니 왕의 영이 설 리 만무하다. 지금이 그때와 무엇이 다른가.

리더를 잘 뽑아야 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배를 뒤집기도 해야 한다. 뱀의 꼬리가 몸을 불구덩이로 끌고 들어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원의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에 구관만 고집하다 병자ㆍ정묘호란이라는 재앙을 초래한 책임은 전적으로 인조에게 있고 윤석열은 21세기 인조다.

윤가는 투표로 선출되었다고 하나 적통을 가진 리더가 아니다. 현대정치의 적통은 정당정치에 기반하며 상식적인 시민, 아니 최소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은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윤석열은 정당정치라는 민주정의 기본을 무시하고 게다가 자신을 기용해준 대통령의 등에 칼을 꽂고 등장한 근본없는 칼잡이다. 저런 자를 내세운 국힘당이나 ‘기껏 5년짜리 대통령 주제’라며 검찰 권력을 더 내세웠던 윤석열이나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 듯 언젠가 스스로에 의해 파멸하게 될 것이다.

잘못을 했으면 사과하고 다음 스텝을 밟으면 될 일이다. 상대 편에서는 아니라는데도 48초를 회의라 우기고 30분을 정상회담이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국정 책임세력의 상식적인 태도가 아니다. 잘못했음에도 욕먹는 것도 싫다면 벌 받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눈 가리고 아웅도 유분수지 자신의 실수를 언론을 겁박하며 검권으로 틀어막겠다고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수고를 직접 하고 있으니 술자리에서나 보스지 조직 내에서 보스는 과분한 평가였던 모양이다. 
 

  ▲ 강미숙 소셜칼럼리스트.

한미동맹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자들이 전 국민에게 ‘바이든’과 날리면을 반복해서 듣게 만들었으니 어이할꼬... 국민들만 전지구적으로 쪽이 팔렸다. 아무리 무식하고 무례한 칼잡이기로서니 풍전등화, 백척간두가 하루아침에 찾아올 줄은 미처 몰랐다. 비정상의 일상화가 너무 오래 가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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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공수지님 2022-10-05 23:33:28
이런 글도 이제 좀 지겹다ᆢ동물농장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복서ᆢ우리 국민들 대다수를 슬픈 복서로 전락 시켜가는 돼지들이 판치는 세상이 점점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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