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숙의 세상돋보기] 분노는 사랑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힘이 세다
- 칼럼 / 강미숙 / 2022-02-04 17:21:06
[칼럼] 강미숙= "호환, 마마보나 더 무서운 불법, 음란비디오..."
VTR로 영화를 보던 시절, 비디오를 틀면 시작부분에 삽입된 경고성 문구였다. 88올림픽을 전후로 VTR을 국내에서도 판매했는데 급속도로 음란물이 확산되자 이런 경고성 문구를 삽입하게 한 것이다. 비디오를 틀면 영락없이 호환마마의 협박아닌 협박을 받아야 했지만 이는 카세트 테이프 앞뒷면에 건전가요 하나씩 삽입할 것을 강요한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국가주의 정책이었다. 비디오의 주 고객이었던 젊은층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채 매번 과장된 목소리로 호환, 마마 하며 공포감을 조장하던 멘트를 들어야 했다.
호환(虎患)이란 호랑이에의 습격을 당해 화를 입는다는 말인데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특히 태백산맥 동쪽인 영동지방에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이가 수십에서 수백 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하니 국가적인 우환이었음에 틀림없다. 산악지대에는 호랑이 잡는 포수들이 많았으며 국가에서도 호랑이 사냥부대를 편성하기도 했다 한다. 정미의병 때 강원의병들이 신출귀몰하게 일본군을 공격하고 후퇴하는 게릴라 전술을 편 것도 산악지대에서 호랑이를 상대로 싸운 오랜 경험이 바탕이 된 것이었다.
마마(媽媽)는 천연두를 신격화하여 마마신께서 곱게 나가주십사 빌었던 무속신앙의 영향을 받아 지어진 말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천연두의 후유증인 곰보자국이 있는 어른들이 더러 있었지만 우리 세대는 천연두로부터 자유로운 세대다. 그러니 음란물을 퇴치하겠다고 비디오에 호환마마를 삽입해 존재하지도 않는 질병과 최상위 포식자에 대한 두려움을 조장하여 국민을 통제하려고 한 것은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었다. 정작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웠던 건 검열과 폭력으로 국민을 통제하려고 한 독재 정권이었는데 말이다.
어제 대선후보 4자 토론을 보면서 어떤 이유든 지난 5년동안 민주진영의 대선후보들이었던 안희정, 박원순, 김경수를 모두 날리고 이재명과 싸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국을 왜 그토록 멸문지화하고자 했는지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 조국 장관이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면 싸워볼 전투의지조차 무력화시켰을 테니 말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우기고 또 우겨서 집안 전체를 몹쓸 사람들로 낙인찍고 자식들까지 고사시켜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구나 하고 말이다.
솔직히 1년 전만 해도 저들은 왜 이재명을 살려두는 걸까, 이재명이 가장 싸워볼 만한 약체라고 생각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재명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해가면서 그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이명박근혜 9년과 고스란히 겹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구나 싶었다. 이재명은 한나라 지배권 하에서 욕설파일, 형 정신병원 문제, 여배우 스캔들 등등 털리고 또 털리며 끝내 살아남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저들은 이재명이 약체라서가 아니라 더 이상 현행법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골칫덩어리였던 셈이다. 그러니 더이상의 도덕성 검증은 의미가 없다.
올해는 검은 호랑이 해다. 선조들은 곶감을 제일 무서워하고 꾀돌이 토끼에게 번번이 골탕먹는 이야기로, 민화에서는 친근하고 익살스럽게 그림으로써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했다. 하지만 한반도에 서식하던 용맹스럽기 이를 데 없는 백두산 호랑이는 민초들에게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백성을 억압하고 공포로 몰아 제압하려는 정치인들을 호랑이에 비유하곤 했다.
나는 윤석열 부부를 보면 호환마마가 생각난다. 호랑이는 배가 부르면 사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사냥감을 정하고 토끼몰이하듯 몰아부칠 위인이다. 윤석열은 자기 공약도 잘 몰라 아니라고 우기고 경쟁 후보를 범죄자 취조하듯 다그치며 아직도 9수씩이나 사시에 매달리던 그 시절 그 감각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9수끝에 통과한 사시, 서울대 출신 이 두가지가 그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체였음을 확인했다. 어리석은 호랑이가 국민과 국가의 안위를 덮친 꼴이니 호환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과거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폭압으로 무장한 독재에 저항하게 만든 유일한 백신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역사에 대한 낙관이었다. 좋은 세상을 볼 수 없다 해도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의병들이나 기득권으로 편입될 수 있는 예비 지식인이었으면서도 자신의 성공이나 안위보다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청춘을 내놓았던 사람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역사 앞에 당당하고자 한 자존심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방관과 궤변이 악화를 구축하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쥐고 흔드는 이들은 더 이상 코비드와 오미크론 같은 역병이 아니라 불구덩이인 줄 알면서 다같이 죽자고 달려드는 좀비 바이러스이고 호환마마 이다. 지금은 과거 행간을 읽어내는 통찰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행간 읽는 능력이 아니라 팩트를 선별하여 쓰레기를 분리수거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이면 된다.
어제 토론을 보고도 단지 정권교체라는 명분을 들어 윤석열을 지지하겠다거나 비판적 지지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윤석열을 지지하겠다는 사람들은 정녕 이 사람에게 나와 내 가족의 삶, 국가의 미래를 맡겨도 좋다는 것인가 묻고 싶다.
지금은 빈정거릴 때가 아니라 분노할 때다. 정당한 분노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며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이자 의무이다. 그 옛날 교육민주화 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핍박받던 나의 은사님은 걱정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먼 훗날 내 아이들이 그때 아버지는 뭐 하셨어요 하고 물으면 대답할 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니?’ 라고 말이다. 거창하게 역사 운운하지 않아도 내 삶에 스스로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게도 푯대가 되었다. 우리는 국가의 중요한 기로에 설 때마다 그렇게 물어야 한다. 내 자식, 내 손자 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인가, 설명할 수 있는 선택인가, 하고 말이다.
인류는 바이러스를 이겨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잠재울 능력은 있다. 지금 우리도 그렇다. 호환은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백두산 호랑이를 절멸시킴으로서 사라졌고 마마는 70년대에 마지막 환자를 끝으로 퇴치되었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것은 국가를 검찰조직처럼 운영할 것이 뻔한 호환과 무속에 삶과 국가의 존망을 예속시킬 것이 뻔한 마마이다. 이래도 호환마마를 지지하겠는가. 기후위기 시대에 살아가야 할 내 자손들에게 나의 선택이 옳은 것이더냐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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