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승 칼럼] 충무공과 대통령
- 칼럼 / 정철승 변호사 / 2022-07-12 16: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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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THE FIRM 대표변호사. |
[칼럼] 정철승 변호사= 조선 수군은 최강의 전력을 가졌을 때 전멸했다. 충무공은 선조에게 '전선(판옥선) 250척만 있으면 왜의 수군이 얼마이든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보고했고, 총력을 기울여 임진왜란 개전 초기에 40여척에 불과했던 전선을 정유재란 당시 180척까지 늘려 수군 전력을 증강시켰다.
그러나 충무공은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고 공과 앙숙이던 원균이 그 직책을 이어받게 되는데, 이는 오직 단 한 사람 선조의 시기심과 어리석음때문에 초래된 일이었다.
원균은 불행한 인물이었다. 충무공과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동네 형만 아니었어도, 무과시험에 먼저 합격하지만 않았어도, 무관 명문가 출신만 아니었어도 충무공의 측근으로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던 나름 용맹한 장수인데, 이처럼 우연한 조건들이 그를 충무공과 불화할 수 밖에 없이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칠천량 해전에서 불살라진 160척의 전선들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왜군 졸개에게 머리를 잘리는 치욕까지 당하면서..
칠천량 해전에서 살아남은 조선수군의 전력은 판옥선 12척(혹은 13척)이 전부였다. 이 빈약한 전력으로 300여적의 왜군 함대와 싸워 이긴 기적같은 전투가 바로 명량대첩이었다.
명량대첩에서 승리하게 된 이유들은 대략 이렇다.
첫째, 충무공의 대장선이 맨 앞에 나서서 수십척의 왜군 전선들에 둘러싸인채 무려 1시간을 홀로 싸워 버텨냄으로써 두려움때문에 뒤에 물러서 있던 조선 수군들에게 용기와 투지를 이끌어냈던 점.
둘째, 지형지물과 조류 변화 등을 잘 활용한 충무공의 전략 전술이 탁월했던 점.
셋째, 지휘관과 군관들은 많았던 반면 전선 수는 부족했기 때문에, 이들 숙달된 장교들이 전선에 무더기로 승선해서 병졸처럼 싸우며 뿜어낸 전투력이 막강했다는 점.
넷째, 그리고 무엇보다도 충무공도 그날 일기에 '이는 실로 하늘이 도운 것이다'라고 적었듯이 호국영령의 보우가 있었던 점..
원균과 충무공의 일로 보듯이, 지도자 한 사람의 차이는 최강의 함대를 잿더미로 만들 수도 있고 그 잿더미에서 다시 최강의 함대를 만들어 낼수도 있다.
대통령 한 사람의 차이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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