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양곡관리법 이대로 좋은가?
- 칼럼 / 류진국 / 2023-01-09 00: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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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양수 의원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28일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전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본회의 직회부 안건 상정에 앞서 항의하고 있다. |
“이제 농해수위는 숫자만 많으면 여야 합의 없이 마음대로 다 하는 위원회가 됐습니다. 정글이나 다름없지 이게 무슨….”(이양수 국민의힘 의원)
지난달 2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곧바로 올리기로 결정하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 이상 하락할 경우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이 법안은 작년 10월 법사위에 회부됐지만 여당의 반대로 처리가 계속 미뤄져왔다. 이에 민주당이 본회의에 직접 보내는 ‘직부의 카드’를 꺼낸 것이다. 국회법 86조 3항은 ‘법사위가 60일 이내에 (법안)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소관 상임위원장은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으로 매입을 의무화하면 격차가 벌어지고 과잉공급 물량을 결국 폐기해야 한다”며 “농업 재정 낭비가 심각하다”고 반대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오히려 그런 돈으로 농촌의 개발을 위해 써야 하는데 과연 이것(개정안)이 농민들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지난 4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업무보고에서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시장에서 쌀을 어느 정도 소화하느냐와 관계없이 무조건 정부가 매입하는 방식은 농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시장기능에 의한 자율적 수급조절과 가격안정이 이뤄지도록 정부가 일정 부분 관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무제한 수매는 우리 농업에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본회의 통과시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초과 생산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쌀 초과 생산량은 지난해 25만t에서 2030년 64만t으로 불어나고, 이를 사들여 처분하는 데 연평균 1조 433억원의 세금이 든다는 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야당 주장처럼 가격 안정화에 기여하기는 커녕 쌀 과잉 기조가 정착돼 쌀값이 현재보다 8% 이상 낮은 17만원(80㎏) 초반에 머물 것으로 예상됐다.
이미 쌀은 공급 과잉이다. 정부는 작년엔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 무려 72만t을 시장 격리 조치했다. 한 해 쌀 생산량의 20% 가까운 물량이다. 시장 격리는 넘치는 쌀을 정부가 예산으로 사들여 창고에 쌓아두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들어간 예산이 1조 7000억원 정도 된다. 이렇게 격리된 쌀은 썩기 직전에야 주정용이나 사료용으로 헐값에 매각된다. 이처럼 인위적으로 가격을 지지하는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매입비용도 부담이지만 보관·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개정안은 농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퇴행적 포퓰리즘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등 6개 단체는 최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곡관리법 개정 재고를 촉구했다. 이들은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다른 작물 전환 유도가 쉽지 않을뿐더러 판로에 대한 부담이 사라져 쌀 생산량이 늘어날 것이고 이는 정책 실패를 넘어 쌀값 하락에 따른 농가 경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 맞는 말이다.
가금생산자단체도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한양계협회, 한국육계협회, 한국토종닭협회, 한국육용종계부화협회, 한국오리협회 등 5개 가금단체는 6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양곡관리법 개정으로 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수매할 경우 다른 품목과의 형평성 문제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반발했다.
가금단체는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 쌀 시장격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오히려 이것이 향후 가금산업을 비롯한 축산업에 대한 예산 감축으로 이어져 결국 조류인플루엔자 등 가축전염병 확산에 대한 피해가 더욱 커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국회와 정부는 천문학적인 농정예산이 소요되고 결국 축산업과 타 산업에 대한 예산축소와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쌀 시장격리 의무화 도입에 대해 전체 식량자급률을 높이면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재검토 해줄 것”을 촉구했다.
국가적 과제인 식량안보도 물 건너 간다. 안 그래도 남아도는 쌀 생산만 늘고 수입에 의존하는 밀·콩 재배율은 정체할 게 뻔해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7년 전체 식량자급률을 44.4%(2021년 기준)에서 55.5%로 올린다는 목표 아래 밀 1.1%, 콩 25% 수준인 자급률을 각각 7.9%와 40%로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쌀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2027년 자급률은 밀 4.0%, 콩 26.4%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농민표를 노린 ‘표(票)퓰리즘’에만 혈안이 돼 우리 농업을 죽인다는 농민단체의 호소와 한 해 1조원이 넘는 국민 부담은 아랑곳하지 않는 무책임의 극치다. 양곡법 개정안이 ‘농업파탄법’이 될 것이란 사실은 자명하다. 야당은 미래 농업을 망치는 개악안을 당장 멈춰야 한다.
자급되고 있는 벼 대신 콩이나 밀·가루쌀 등을 심으면 직불금이 제공되는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 높은 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농업의 미래를 이끌 젊은 농업인을 대거 육성하며 날씨 등에 구애받지 않는 스마트팜을 늘려 농작물 생산량과 품질 경쟁력까지 높이는 농정을 펴기 바란다.
정부는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도록 미봉책에서 벗어나 단발성이 아닌 코페루니쿠스적인 대전환을 기획하고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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